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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신마의 말

by 아도비야 2021.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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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신마의 말에 천우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 어느 때보다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며 절벽에 면하여 세워져 있는 그리 크지 않은 전각을 멀찍이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그 지존연무동의 입구 역할을 하고 지존전이 보이는 곳으로 온 사람들은 원래의 천우 일행들 외에도 새로 합류하게 된 구양헌과 일곱 명의 장로들, 그리고 일백마황대에 속한 95명의 극마와 탈마급 고수들과, 남염까지 가세한 여덟 명의 대주들까지 총 망라된, 그야말로 천마신교 내 최고 고수들은 죄다 모여 있는 상황이었다. 아직 천마건곤대전의 상황이 완전히 종료된 것은 아니기에 백양신마나 원로들의 입장에서는 언제든 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자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고 보아도 전혀 무리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천우는 그들 모두가 함께 오는 것을 수락했고, 그들 또한 천마건곤대전의 마지막 상황까지 지켜보기 위해 이곳까지 따라온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그들 모두 자명천마종의 전설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질실을 확인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컸던 것이다.
천우는 백양신마의 간단한 설명을 들으면서 지존전이라는 곳의 상황과 그 안쪽까지 기를 느껴보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죽립안쪽에서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출구가 따로 있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네, 지존전이 막힐 수 있는 위험에 따른 일종의 안전 대책이라 할 수 있지.
아무래도 그 대종사라는 자는 벌써 그 출구로 나가버린 듯하군요.
천우의 말에 백양신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안색이 크게 변해 천우를 바라보았다.
아니''''들어가 보지도 않고 자네가 그것을 어찌 안단 말인가?
백양신마의 놀람에 그 옆쪽에서 동사왕의 퉁명스런 음성이 흘러나왔다.
신마께선 아직도 천 아우의 능력을 모르시오? 천 아우에겐 천안통을 능가하는 심안통이 있으니 그까짓 거 알아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요.
동사왕의 말에 백양신마도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는 곧 심각한 안색으로 말했다.
그럼 대종사가 이미 출관하고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란 말인가?
글쎄요, 아무튼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지요. 그래야 그가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천우의 말에 중인들 모두 경악한 와중에도 직접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에 모두 스긍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천우 일행들이 모두 지존전으로 다가서기 시작하자 전각의 입구 쪽에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복면까지 하고 있는 야행복 차림의 십여 명이 갑자기 나타나며 그들을 막아섰다.
이곳부터는 본교의 대종사가 아니라면 아무도 들어설 수 없소, 그러니 모두 돌아가도록 하시오.
모여 있는 사람들 모두 고수 아닌 자들이 없었기에 그들의 등장쯤은 당연히 예견하고 있었고, 또한 그들이 지존전을 수호하는 무영사신대의 일원이라는 것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대종사가 아니라면 그 어느 누구에게도 허리를 굽히거나 예를 취하지 않는 자들이었고, 그것은 이미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그들의 건방져 보이는 행동이나 말투로 특별히 기분 나빠하는 자들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말대로 순순히 물러날 상황이 아니기에 백양신마가 나서서 말하기 시작했다.
자네들도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원로원주를 맡고 있는 사람일세. 그리고 새로 인명된 곤패주께서 천마건곤대전을 선포하여 지금은 천마건곤대전의 상황이라네. 그리고 건패주인 소종사도 곤패주에 의해 이미 제압되었네.
자네들의 임무는 잘 알고 있네만 우리는 지금 들어가 봐야 하는 상황이고, 막겠다면 어쩔 수 없이 손을 쓸 수밖에 없네, 그러니 막지 말고 길을 열어주었으면 하네.
백양신마의 말에도 그들은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그 중 처음에 말을 꺼내었던 선두의 복면인이 다시 무심한 음색으로 말했다.
물론 귀하가 원로원주 백양신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소, 그리고 천마건곤대전이 선포되었다니 좀 뜻밖이긴 하오만 우리는 여전히 길을 비켜줄 수 없소, 그러니 정 들어가야 하겠다면 우리를 뚫고 가시오.
그 말에도 백양신마는 별다른 분노의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자네들 뜻이 그렇다면 더 이상 다른 말은 않겠네 그럼 시작할 테니 준비들 하게.
백양신마의 그 말이 떨어지자 그들 십여 명 뒤로 다시 이십여 명의 인원들이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내며 일종의 검진을 형성한 듯한 모습으로 진형을 이루었다.
백양신마는 그 모습을 유심히 보다가 무척 놀란 표정으로 나직한 경호성을 발했다.
삼십육지살천강진!
백양신마의 경호성에 천마신교의 사람들 모두 두 눈에 놀람을 드러내었다.
소림의 백팔나한진을 몇 배 능가한다는 천마신교 절대 검진인 삼십육지살천강진의 위력은 그야말로 막강하지만, 합격진을 구성하는 개개인이 극마 이상의 고수들이어야 하고, 또한 진을 이루는 그들 서른여선 명이 모두 같은 내공심법을 익히고 있어야만 시전이 가능하다는 절대 살진이었다.
때문에 이론상으로 말들어지긴 했지만 아직 한 번도 실지로 펼처진적이 없었던 초극강의 검진이 무영사신대 36명에 의해서 펼쳐진 것이다.
그것은 결국 그들 개개인이 같은 내공심법으로 극마경을 이룬자들이라는 의미였고 진을 구성함으로써 그들이 지닌  능력을 열 배 이상 발휘할 수 있을 테니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지니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실지로 삼십육지살천강진이라면 일백마황대 전원이 상대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실로 막강한 진법이었다.
무영사신대가 대종사에 의해 친히 키워진 자들이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들이 설마 지살천강진을 펼칠 수 있을 정도일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하고 있었다.
천우도 그들이 펼친 진세를 보고 그들 간에 이어진 기의 유동을 느끼면서 일전에 개방에서 경험했던 격체전력을 이용하는 진세라는 것을 알아보았지만, 확실히 효율 면에서는 천양지차의 위력이 있는 진세라는 것도 알아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들 개개인이 극마경 이상의 자들인 점을 감안한다면 한 점에 가해지는 압력은 오히려 개방도 삼백여 명이 펼쳤던 구화타구진 보다 서너 배 이상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듯했다.
백양신마는 상대의 검진이 삼십육지살천검검진이란 것을 알아보자 홀로 대항할 생각을 버리고 뒤로 물러서서 천우를 바라보았다. 천우가 나서겠다면 다른 사람들은 나서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곳에 있는 자들 모두가 합공에 나서야 깨트릴 수 있는 검진이 바로 지살천강검진이었다. 그것도 상당한 희생을 감수하고서 말이다.
솔직히 백양신마는 천우가 나서지 않기를 바랐다. 아무래도 애초의 예상과는 달리 건패주 쪽에서 전향한 초극 고수자들이 너무 많았고, 지금과 같은 기회에 그들로 하여금 무영사신대를 상대토록 하다면 거의 양패구상할 수 있는 상황이기에 나중을 위해서도 오리려 그쪽이 더 좋은 것이다.
하지만 백양신마의 바람과는 달리 예상대로 천우가 천천히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중인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 모습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특히 풍검신의 무위를 아직 실지로 보지 못했던 장로들이나 대주들은 과연 그 혼자서 절대 무적의 검진이라는 삼십육지살천강검진을 깨트릴 수 있을지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비록 그들도 대세에 따라 곤패주 쪽으로 전향하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들려주는 풍검신의 무위는 도대체가 황당한 얘기뿐인지라 반신반의하는 상태였다. 때문에 만약 그가 혼자서 검진을 결파한다면 그들의 말도 모두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딴 맘 먹을 일이 없게 되는 것이었다.
삼십육지살천강검진을 구서하고 있는 서른여섯 명의 무영사신대원들은 백양신마가 물러나자 곧 전원 합공이 이루어지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죽립을 깊숙이 눌러쓴 정체불명의 흑의인 혼자서 달랑 걸어 나오자 두 눈에 잠시 어이없다는 빛을 보였다.
실지 그들은 무영사신대 중에서도 가장 실력이 타월한 자들이었고, 심십육지살천강검진을 구성한 상태에서는 천마신교내의 최강 단체라는 일백마황대 전원과 붙어도 지지 않을 지신이 있었던 것이다. 한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방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단 한 사람만이 자신들을 상대하려는 의사를 보이며 나서자 어이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옥의 수련을 통해서 감정을 철저히 절제하는 법을 체득한 자들답게, 비록 상황에 맞지 않을 경우라 하더라도 상대방을 경시하는 마음은 갖지 않았다. 자신이 없는 자라면 결코 혼자 나설 리도 없을 것이고, 방심이야말로 가장 큰 적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에 비록 한순간 어이없다는 생각이들긴 했지만 조금도 기세를 흩뜨리거나 방만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천우도 그들이 생각보다 훨씬 혹독한 수련을 쌓은 자들이는 것을 마주 대하면서 느낄 수 있었고, 전각 안에 길게 이어진 통로에 은신하고 있는 자들도 전부 이들과 같은 자들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자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어차피 이들은 신념에 의해 결심을 바꾸지 않을 자들이었고, 또한 폐관 연무관이라는 곳에는 이미 대종사라는 자는 없는 것이 확실했다. 게다가 동굴 통로에는 각종 기관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하니 겨우 빈집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한 기관까지 일일이 파괴해 가며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번거로운 일이었다.
이미 기로써 대종사라는 자의 종적을 살펴보면서 천우는 연무관 안의 모든 통로와 공간의 위치를 파악한 상태였고, 마침 그 연무관이라 짐작되는 넓은 공간이 지상보다 아래에 있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자 굳이 번거로운 걸음을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떠올랐다.
천우는 걸음을 멈춘 상태에서 뒤를 돌아보며 화천악에게 말했다.
잠시 그 자모천뢰신궁이라는 것을 좀 빌려주시면 고맙겠소,
천우가 전면으로 나서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서서 자신에게 자모천뢰신궁을 빌려 달라고 하자 화천악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무인이 남의 무기를 빌려 달라는 것 자체도 엄청난 실례인데, 더군다나 고금육대천병 중 하나인 자모천뢰신궁을 빌려 달라는 것이니 말이다. 만일 그 말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면 당장에 그 입에 벼락화살을 박아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풍검신 천우였고, 자신이 빌려주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분명 자신을 '쫀쫀한 놈' 으로 볼 것이 분명했기에 화천악은 갑작스러운 천우의 요청에 당황하면서도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무,물론이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천 형이라면 믿고 빌려드릴 수 있소이다. 하, 하하,
그 말은 당신은 결코 남의 물건을 가로채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의미의 말로써, 순수한 의도의 말이라기보다는 혹시 있을지 모를 '눈 버젓이 뜨고 도둑맞는다' 는 재수없는 일을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
자신의 대범함을 보이기 위해 말끝에 호탕한 웃음을 보여주었지만 어쩐지 요즘은 자신의 웃음소리가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 화천악은 장포로 가려진 왼팔 소매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곳에 특수한 장치로 부착되어 있던 자모천뢰신궁을 탈착하여 꺼내 들었다.
화천악이 자모천뢰신궁을 꺼내어 들자 눈에서 언뜻 탐욕을 보이는 자도 있었지만 감히 어쩌지는 못하고 그가 천우에게 다가가도록 놔두었다.
천우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신에게 자모천뢰신궁을 건네는 화천악을 보며 희미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고맙소, 금방 돌려드리리다.
벼, 별말씀을'''조,조심해서 다뤄주시오. 보기보다 약한 녀석이라''''
천우가 여전히 희미한 미소와 함께 자모천뢰신궁을 받아 들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러리다. 이제 잠시만 뒤로 물러나 계시오.
천우가 그 말과 함께 다시 무영사신대를 향해 몸을 돌리자 화천악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겨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한데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가 생각난 듯 기쁜 표정을 떠올리며 얼른 몸을 돌려 말했다.
천 형, 그 녀석은 천뢰신공을 익히고 있지 않으면 사용하지 못하''''헉!
그 순간, 화천악은 유쾌한 목소리로 외치다가 헛바람을 들이켜며 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저,저럴 수가! 저게''''자모천뢰신궁?
오,저런!
역시''''저게 천뢰신궁의 본 모습이었군.
그 순간 화천악은 의문성을 비롯해서 사람들의 입에서 경탄성들이 터져 나오고 있는 이유는 삼십육지살천강진을 구성하고 있는 무영사신대에게 겨누어진 자모천뢰신궁이 이 순간 거대한 크기로 불어나 오히려 웬만한 활보다도 몇 배나 커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거대해진 활 자체의 표면에서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뇌전의 기운이 쉴 새 없이 흐르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활을 쥐고 서 있는 천우의 모습은 그야말로 벼락을 다루는 뇌신처럼 보였다.
지살천강진을 구성하고 있던 무영사신대는 천우가 다가오다가 갑자기 뒤돌아서서 누군가에게 전설상의 기병인 자모천뢰신궁을 빌려 달라고 말하자 다시 흠칫 놀라기는 했지만 크게 상관하지는 않았다. 자신들이 구성하고 있는 지살천강진은 결코 병기의 이점으로 어찌할 수 있는 평범한 검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리들 중 누군가가 장난감 같은 활을 꺼내어 그 에게 건네주고, 그가 그것을 자신들에게 겨눌 때까지도 긴장은 했을 망정 겁은 조금도 나지 않았다.
한데 갑지기 그 활이 죽 늘어나는 듯 보이드니 전체가 뇌전으로 이루어진 듯 보기에도 섬뜩한 뇌전 줄기들이 연신 거대해진 활을 타고 오르내리는 것이 보이자 절로 가슴 한구석이 써늘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황급히 전력을 끌어올려 기세를 한군데로 모아 저 무시무시한 활에서 발출될 기운에  대비할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단 한 발만 쏘겠소, 피하든 말든 그것은 당신들의 자유요.
천우는 그 말과 함께 자모천뢰신궁이 지닌 기운과 동일한 마법의 기운인 라이트닝을 자신의 왼손 안에서 작열시켜 자모천뢰신궁이 그 기운을 흡수하여 원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크기를 유지시키면서, 오른손으로는 또 다른 의지로 헬로가드의 권능 중 하나인 마왕의 창을 일으켰다.
'더 데빌 랜스!
그 순간, 천우의 오른손에는 암흑의 뇌전이 넘실거리는 거대한 흑색 마왕창이 하나 생겨났다. 그리고 천우가 그 창을 들어 뇌전이 흐르고 있는 활중에 거는 순간 그 묵빛 마왕창으로 시퍼런 벼락 줄기가 흐르는가 싶더니 이내 미친 듯이 튀기 시작했다.
치익! 타닥! 치이익!
[뭐, 뭐야'''이 괴물]
[헉! 너 언제 그걸 훔쳐갔냐?]
저, 저게 화살?
저, 저걸 화살이라고 할 수''''
회!
천우의 입에서 다시 한 번 경고성과 같은 짧은 기합성이 터져 나오자 마왕창이 그 상태에서 회전을 일으키기 시작하더니 주변의 모든 대기를 빨아들였다.
휘류류류류류!
지이이이이잉!
그 순간, 삼십육지살천강검진을 구성하고 있는 무영사신대원들의 두 눈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복면으로 가려진 얼굴은 이미 사색이 되어 있었다.
자신들의 십여장 눈앞에서 뇌전과 대기를 빨아들이며 엄청난 회전을 일으키는 화살!
아니 기둥이라 표현해야 맞을 그것이 또한 엄청나게 거대해진 전설상의 활이라는 자모천뢰신궁에 걸려 자신들에게 겨누어진 상황!
그들에게는 그 순간 어떠한 자신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저 무시무시한 흑생 창이 빛살처럼 날아드는 순간 자신들은 산산 조각이 나서 흩어지리라는 것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예감하고 있었덕 것이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 순간 천우의 입에서 다시 담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가급적 피하시기 바라오. 그럼!
치이익! 쉬아아아아악!
그 말과 함께 천우가 천뢰신궁에 걸려 있던 활살 대용의 암흑의 권능으로 이루어진 마왕의 창을 놓았고, 그 순간 회전하면서 대기를 먹어 치우고 있던 마왕의 창이 무시무시한 파공음과 함께 빛살을 먹어가며 전면으로 퉁겨 나갔다.
아, 안돼''''
제길''''난 못 해!
슈아아앙!
도저히 물러설 수 없다고 마음속으로 수만 번을 외쳤지만 그것은 결코 정상적인 인간의 의지로 대항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천우의 말이 끝남고 동시에 지살천강검진을 이루고 있던 흑의인들이 메뚜가 튀듯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고, 정말 아슬아슬한 차이로 마왕의 창은 그들을 통과했다. 그리고 자신의 회전 반경에 걸린 장애물들을 모조리 먹어 치우며 전각과 통로를 지나 벽과 암벽들을 먹어치우며 마왕의 창은 그렇게 쏘아져 나갔다.
잘 뚫는근, 무너질 염려도 없고,
그렇다 천우가 굳이 마왕의 창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닿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무한공간으로 이루어진 권능의 창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던지기만 해서는 사람이 다닐 수 있을 만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없기에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뇌전의 기운도 함께 담아 강력한 회전으로 원래의 파괴 반경을 대폭 늘리고. 더불어 회전력으로 인해 뇌전에 의해 파괴된 부산물들이 다시 마왕의 창으로 흡수되도록 한 것이다.
거기에 굳이 자모천뢰신궁을 쓴 이유는 마왕의 창이 암흑의 권능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것이기에 일반적인 기운은 모두 흡수되어 버릴 수밖에 없지만, 자모천뢰신궁은 마기에는 상극인 신기를 지닌 기물이니 그것을 통해 흘러나오는 뇌전의 기운 역시 신성한 기운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자모천뢰신궁에서 뿜어진 뇌전기는 다른 기운들처럼 마왕창에 금방 흡수되지 않고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기에 그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흡수되지 않고 마왕의 창 외부에서 사방으로 뻗치는 뇌기는 엄청난 회전력으로 인해 빈틈이 없어지게 되고 , 결국 반자 두께에 불과한 마왕의 창을 일장여가 넘는 엄청난 굵기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천우는 단순히 이것저것 조합해서 모든 번거로움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동굴을 뚫는다는 생각으로 벌인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그것이 단순한 동굴 뚫기가 아니었다. 그 순간 천우를 인간으로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바정상적인 것이다.
천우는 자신이 뚫어놓은 직경 일장 가량의 반듯하고 한 점의 삐뚫어짐도 없는 시원한 통로를 보면서 말했다.
보시오. 연무관엔 아무도 없지 않소.
그의 말처럼 마왕의 창은 천마신교 대종사의 연무관까지 일직선으로 훤히 보이도록 모든 장애물을 무시하고 시원하게 둘어놓은 상태였다.
과연 그곳을 통해서 보이는 연무관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두 눈에는 여전히 연무관의 그러한 광경은 두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어디로 갔을까? 대종사란 자는''''
여전히 천우의 독백과도 같은 음성만이 장내에 흘러나오는 가운데 정말 기나긴 하루를 밝혀주던 태양도 힘들었다는 듯이 사람들에게 서서히 붉은 노을을 뿌려주고 있었다.

[마검사] 11권에서 계속




1장 무엇을 위한 안배인가


사람들이 천우가 만들어놓은 거대한 통로를 보면서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동안, 연무관으로 향하는 정식 통로를 지키고 있던 나머지 무영사신대 역시 새로운 통로 중간중간에 나와 서서는 아연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원래의 통로는 지그재그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곳에 매복하여 통로를 지키고 있던 그들이었지만 눈앞에서 혹은 등뒤에서 벽들이 무언가에 휩쓸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자 그곳으로 나와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연무관까지 거대한 일직선의 통로가 뚫려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들 역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개중에 몇 명은 재수없게 마왕창이 지나는 길목에 매복해 있다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육신이 산산이 분쇄되어 마왕창의 공간 안으로 휩쓸려 들어가 버리기도 했지만 지금 그러한 것을 문제 삼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천우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통로에 모습을 보이고 있는 흑의 복면인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경악으로 인해 석상처럼 굳어 있는 화천악을 향해 본래의 모습을 회복한 자모천뢰신궁을 내밀며 말했다.
좋은 활이요.
화천악은 무의식중에 천우가 내미는 자모천뢰신궁을 받아 들고는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드는 듯 떠듬거리는 어조로 물었다.
어, 어떻게''''  한 것이오?
천우는 다른 설명은 하지 않은 채 화천악에게 희미한 미소만 하차례 지어 보이고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백양신마를 돌아보았다.
짐작 가는 곳이 있습니까?
그 물음에 백양신마 역시 억지로 황망한 정신을 수습하고는 난색을 표하며 떠듬거렸다.
그, 글쎄''''일단은 연무관으로 가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지않겠나? 그곳에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니 말일세.
천우가 거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몸을 돌려 자신이 만들어놓은 통로로 향하자, 사람들도 그제야 화급히 정신을 수습하고는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천우가 쏘아냈던 가공할 마왕창의 기세를 견디지 못하고 사방으로 몸을 피했던 서른여섯 명의 무영사신대는 더 이상 중인들을 저지할 생각도 못 하고 통로로 들어서고 있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천우와 그 옆으로 화급히 따라붙은 백양신마가 선두에 서서 통로로 들어서자, 원래의 통로에 매복해 있던 칠십이 무영사신대가 본능적으로 병기를 치켜들며 저지할 테세를 보였다. 그러자 백양신마가 계속 다가서면서 냉엄한 목소리로 외쳤다.
물러서라! 대종사께서 연무관에 계시지 않는 이상 너희들은 더 이상 길을 막아설 이유가 없다.
백양신마의 그 외침에 통로 중간중간에서 무기를 빼어 들고서 있던 무영사신대원들은 오히려 어느 정도 이성을 회복한 듯 보였다. 더불어 뒤쪽에 서 있던 무영사신대원들도 빠르게 앞으로 다가서며 다시 통로의 중간에서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백양신마의 검미가 다시 꿈틀거리는 순간 천우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며 가벼운 소성을 발했다.
피어!
[뭐야? 피어마법을 펼치면서 그걸 그대로 외치면 어쩌라는 거야?]
아티오네스의 핀잔이 이어졌지만, 그 순간 앞을 가로막았던 무영사신대원들은 흡사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며 진저리를 치더니 갑자기 들고 있던 무기로 내팽개친 채 사색이 되어 다시 원래의 통로로 도망쳐 버렸다. 천우의 크지 않은 외침에 발해진 순간 그들의 뇌리를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대항할 수 없다는 본능적인 공포와 도망가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길이 열지자 백양신마는 오히려 가던 걸음을 멈추고는 전면의 통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과 도를 바라보며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잘못 들어는지는 몰라도 천우가 피하라고 명령조로 짧게 한마디한 것 같았는데, 단순히 그 한마디에 통로를 막고 있던 무영사신대원들이 무기마저 팽개치고 도망가 버린 것이다.
당연히 백양신마로서는 그러한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 입구를 막아섰던 자들과는 달리 그들은 곤패주의 무위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에 길을 막고자 나선 것이 분명했다. 한데도 단순한 말 한마디에  그것도 그냥 물러서는 것도 아니고 무기마저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행동을 보인다는 것은 삼류무사들이라 해도 있을 수 없는 행동인 것이다.
천우는 피어마법의 효과가 생각 외로 훌륭해서 입가에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무력으로 길을 여는 것도 물론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쓸데없는 희생자들을 만들 필요가 없기에 대항할 수 없는 공포를 유발시킨다는 피어마법을 사용해 본 것인데. 지금과 같은 경우는 확실히 무공이나 여타의 방법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천우와 백양신마를 선두로 중인들이 다시 움직이자 무기마저 내팽개친 채 도망쳤던 무영사신대원들은 그 모습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순간적으로 그들의 뇌리를 지배하던 알 수 없던 공포심은 이미 깨끗이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공포감에서는 벗어났다 해도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자신들의 행동에 극심한 혼란을 느끼고 있었고, 그 때문에 더이상 전의를 일으키거나 막을 생각을 못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차피 그들도 대종사가 연무관에 없는 상태임을 알았기에 절박하게 막아야만 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다만 중인들이 다가서자 본능적으로 막아섰던 것에 불과했다.
그런 무영사신대를 지나친 중인들은 얼마 후 모두 연무관 내부로 들어설 수 있었다.
연무관의 내부는 무척이나 넓었기에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비좁지 않았다.
천우가 둘러보니 연무관 사방의 벽과 천장은 모두 두꺼운 만년한철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때문인지 연무관의 내부에는 살갗이 시릴 정도의 차가운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중인들이 들어선 곳은 원래의 입구가 있는 우측 벽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중인들은 그곳으로 들어서면서 연무관 내부를 둘러싼 만년한철의 두께가 거의 한 자에 육박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연무관 내부를 둘러보다가 또다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들을 지었다. 좀 전의 그 무시무시한 강기의 화살이 백여 장이나 되는 동굴을 뚫어놓았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연무관 내부에는 어떠한 잔해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때문에 천우의 풍검을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 외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꿈을 꾸고 있는지 확인해 보거나 혹은 머리를 부여잡은 채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 이 순간 대종사가 과연 어디로 사라졌는가 하는 사실보다는, 자신들이 보고 있는 일들이 과연 어떻게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가 더 고민스러웠던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이곳에 온 목적조차 잊은 채 혼란스러운 생각을 정리하느라 우두커니 서 있는 동안, 천우는 연무관 내부를 빠르게 살펴보며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그가 애초에 천마신교에 오게 된 것은 묵월의 요청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천우 개인적으로도 아티오네스의 부탁을 들어 주려는 의도와 특히 천마에 관해서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한데 대종사란 자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 모든 일들이 낭항에 빠지게 되기에 천우는 최대한 오감을 열어 내부를 살펴보았다.
그렇게 정신을 집중한 순간, 천우는 연무관 내부에서 약간 이상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미약해서 지금처럼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느끼기조차 힘들 정도였는데, 친숙한 듯하면서도 생소함이 느껴지는, 좀처럼 종잡기 힘든 기운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천우의 느낌을 전해 받은 아티오네스와 헬로가드가 동시에 아는 척을 했다.
[어라? 이곳에 어떤 마법이 발현되었던 모양이네.]
[흠'''느껴지는 기운으로 봐서는 분명히 내 어둠의 마나가 사용된 것이다.]
아티오네스와 헬로가드의 말에 천우가 이채를 발하며 물었다.
[좀 자세히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군,]
그 말에 아티오네스가 먼저 의식 속에서 대답했다.
[어떠한 마법이든 일단 발현되면 그 장소에는 한동안 흔적이 남게 된다. 그것은 바로 마법이 자연의 성질을 변화시켜 어떤식으로든 강제로 속성을 부여하기 대문이지.
하급 마법이라면 바뀐 성질이 금방 정화되어 원래의 자연의 속성으로 돌아가겠지만, 고위급 마법일수록 강력한 속성이 부여되기 때문에 바뀌 마나의 성질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남아 있는 속성으로 어떤 마법이 발현되었는지 파악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네가 느끼는 그 기운도 바로 마법이 발현된 후에 강제로 바뀐 마나의 속성이 아직 본래의 자연의 속성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아있는 것이다.]
[그럼 어떤 마법이었는지 알 수 있겠나?]
[글쎄''''대부분이 자연의 속성으로 돌아가고 남아 있는 기운이 너무 미약해서 확실히 단정 짓기는 좀 힘들 것 같은데''''헬로가드라면 자신의 기운에 의해 발현된 마법이니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내가 느끼기에는 환기 계열의 마법이 아니었나 싶긴 하지만''']
별로 자신없어 하는 아티오네스의 말투에 헬로가드가 득의의 웃음을 흘렸다.
[크크! 이곳에서 발현된 것은 컨틴젼시가 분명하다, 그것도 6서클 정도의 마법 수준이 아닌 마왕의 권능으로 공간 자체에 광범위하게 펼쳐놓았던 것이 틀림없다. 일반적인 컨틴젼시의 마법으로는 결코 스스로가 아닌 외부의 공간에 펼쳐놓을 수 없지.크크크!]
[흥! 네놈의 기운을 몽땅 빼앗아 갔다는 그 천마인가 하는 인간이 발현시켰던 모양인데. 자기 자신의 권능을 알아보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큰소리냐, 그럼 컨틴젼시에 어떤 조건이 걸려 있었는지도 알아볼 수 있겠군,]
[그건'''내가 그놈 의식 속에 들어앉아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이냐!]
[그런 것도 모르면서 무슨 큰소리냐,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드래곤의 용언마법 자체가 네가 말하는 권능과 하등 다를 바 없다는 것도 모른단 말이냐.
어차피 마법의 서클이란 개념은 너희 마족들이 인간과 계약하여 설쳐대는 통에 선조 드래곤들께서 인간들에게 마법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놓은 개념일 뿐이다. 당연히 하위 서클의 마법이라도 용언마법을 통해서는 하나하나가 권능으로 발현될 수 있는 것인데 그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으스대는 것이냐.]
[케케, 어림없는 소리! 용언마법 따위를 어찌 마왕의 권능과 비교한단 말이냐, 얼마 전에도 봤겠지만 이 인간이 발현한 마왕창의 권능은'''어라라? 그러고 보니 너 도대체 어떻게 가르쳐주지도 않은 내 마왕창의 권능을 쓸 수 있었던 거지?]
[그냥 생각이 나더군,]
[뭐야? 그런 말도 안 되는'''가,가만! 너 혹시 내가 갇혀 있던 무의식의 공간을 살펴본 거냐?]
[그러니까 내 말은, 무의식의 공간 안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네 의지로 의식화시킬 수 있느냐는 말이다.]
[헬로가드, 너 그 무의식의 공간에 갇혀 있으면서 뭔 짓을 한거냐? 설마 길길이 날뛰면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권능을 다 펼쳐보았던 것은 아니겠지?]
그 순간 천우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 헬로가드가 부들부들 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그게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서'''하지만 외부도 아닌 말그대로 순수한 무의식의 공간 안에서 벌어진 일을 어찌 인간이 자각할 수 있다는''']
[쯧쯧! 너는 아직도 이 인간이 인간으로 여겨지는 모양이지?]
[이,이런 제길! 천마, 그놈이 아무리 협박해도 다 알려주지 않았던 것들인데''너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펼칠 수 있는 것이냐?설마 내 궁극의 권능까지 훔쳐간 것은 아니겠지?어서 말해봐! 마왕을 등쳐먹는 이 날강도 같은 인간아!]
문득 백양신마의 심각한 표정이 눈에 들어오자 천우는 의식속에서 악악대는 헬로가드를 무시하고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뭔가 알아낸 것이 있습니까?
음, 잠시 경황이 없어서 생각지 못하고 있었네만'''연무관 내부의 사정이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네,
자세히 말씀해 보십시오.
이곳이 대종사의 연무관으로 만들어진 이유는 바로 엄청난 마기 때문일세, 물론 노부 역시 이 안에 들어와 본 것은 지금이 처음이긴 하네만, 전해지는 얘기로는 본교가 세워지기 이전부터 천마 조사께서 이곳에 기거했다고 하네, 그리고 이곳에는 엄청난 양의 마기가 잠재해 있었서 최소한 극마경의 경지를 이룬 자가 아니라면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마기에 의해 심맥이 파열되어 죽어버릴 정도였다고 하네,
천마조사께서 의문스럽게 사라지시고 난 후에 이곳은 본교의 대종사를 위한 연무관으로 꾸며졌지만, 역대의 대종사들 중에는 이곳에서 수련하다가 너무나 강대한 마기를 견디지 못하고 오히려 주화입마에 걸리거나 광마가 되었던 적도 있었다네.
한데 지금은 그러한 마기를 전혀 느낄 수가 없지 않는가, 전대의 대종사까지만 해도 연무관 내부의 마기를 흡수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들었으니, 결국 당금의 대종사가 이곳의 마기를 모두 흡수하고 출관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일세.
천우는 백양신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제야 모든 상황을 예측해 볼 수 있었다.
컨틴젼시는 원래 자시 스스로에게 펼치는 조건부 마법이다. 하지만 천마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권능의 힘을 빌려 자신이 아닌 이곳에 공간 자체에 컨틴젼시를 펼쳐두었고, 그것은 누군가가 이곳에 남겨둔 마기를 전부 흡수하는 것이 발현 조건이었을 것이다.
결국 대종사란 자가 천마가 남겨놓은 이곳의 마기를 모두 흡수하였기에 컨틴젼시 마법이 발현되었을 것이고, 그 결과로 천마가 남겨놓은 또 다른 무언가를 얻거나 알게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중원 각처에 천마가 남겨놓았던 마기를 흡수했던 자들이 했던 행동들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들 역시 천마가 남겨놓았던 마기를 흡수한 수에 컨틴젼시의 조건을 충족시킨 대가로 발록을 소환해 내는 방법이라든지, 혹은 마농사괴를 데스 나이트로 부활시키는 방법 등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더불어 천마무영패 등에 대한 비밀도 알려주었을 것이다.
결국 대종사란 자 역시 이곳에서 사라진 이유는 천마가 알려준 무언가를 얻거나 알아보기 위해서일 것이고, 그것은 분명 자명천마종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천우는 천마가 안배해 놓았던 것들을 전체적으로 연관 지어 생각해 보다가 문득 자신이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천마가 반드시 자신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안배를 해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자신 때문에 펼쳐둔 안배가 아니라면'''가만히 따져보니 천마의 안배를 얻은 자들은 자신이 개입하지 않았을 경우 필연적으로 서로 간에 부딪치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천마는 어느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남기거나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그들 모두가 알고 있는 것, 혹은 찾고 있는 것들이 합쳐져야 완전한 안배가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니 ''''내가 없었다면 그들은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되었겠지.
만약 나의 존재를 의식한 것이 아니라면 '''그럼 누가 최종적으로 그 안배를 얻기를 원했던 것일까? 그건 역시 대종사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왜 대종사 한 사람이 얻을 수 있도록 하지 않고 굳이 안배를 나누어놓았던 것일까? 혹시''''
그 순간 천우는 또다시 무언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기에 죽립 안에서 안색이 가볍게 굳혔다.
혹시 천마는 세상의 파멸을 원했던 것일까? 내가 보았던 그 발록이라는 마계의 괴물과 기환노조가 부활시켰던 마농사괴들이라면 충분히 세상을 피로 잠기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게다가 아직 알 수 없는 능력을 지닌 대종사라는 자까지 가세한다면'''
분명 세상을 파멸시킬 만한 힘이었다.
하지만 천마가 원한 것이 세상의 파멸이었다면 굳이 이런 번거로운 방법을 쓰지 않고서도 이미 오래 전에 그 혼자만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대종사란 자를 만나보아야 확실히 알겠군,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란 존재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다면 결코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천마.
천우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다시 백양신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 연무관에는 성취에 따라 나갈 수 있는 출구가 따로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네. 혹시 곤패주는 이곳의 출구를 찾을 수 있겠는가?
백양신마의 물음에 천우는 곧바로 생각을 접고 단단한 청석으로 이루어진 좌대 뒤편으로 묵묵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통로를 만들어서 들어선 곳을 제외하고 삼면의 벽이 모두 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이미 감지한 상태였다. 그중 천우는 가장 최근에 움직였던 흔적이 보이는 철문을 향해 다가섰다. 대종사란 자는 분명 그곳을 통해 나갔으리라.
좌대의 뒤편으로 다가선 천우는 주저없이 만년한철로 이루어진 벽면을 향해 두 손을 들어 올리는가 싶더니 양손을 그곳ㅇ 밀착시켰다. 그러자 사람들은 기대 어린 표정으로 두 눈을 반짝였다.
사람든은 워낙에 기상천외한 일들이 여러 번 목격한 상태인 지라 천우가 아무도 모르는 출구를 찾아낸 것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이번에는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 하고 있는 중이었다.
천우도 그러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자 내심 쓴웃음을 먹금고는 곧 양팔을 좌우로 활짝 벌렸다.
꾸그그그긍!
그러자 곧 하나로 보였던 철벽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엄청난 소음과 함께 좌우로 밀려나 버렸다.
그 철문은 원래 특수한 기관장치에 의해서만 열리도록 되어 있는 것이지만 친우의 엄청난 괴력에 문을 자동시키는 기관이 사정없이 부서져 나가며 강제로 열린 것이다.
사람들은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며 보고 있다가, 육중한 철벽이 좌우로 갈라지며 맥없이 양쪽으로 밀려나 버리자 오히려 백 빠진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기관이 아니면 열 수 없는 철문을 강제로 연다는 것이 절대로 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정도 일이라면 아주 평범해 보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막혀 있는  벽이었다면 모를까 열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철문이었기에 천우는 별다른 조치 없이 그냥 힘으로 열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만년한철로 이루어진 육중한 철문이 열리자 그 뒤로 겨우 한 사람 정도만이 빠져 나갈수  있는 좁고 어두운 통로가 드러섰다.
천우는 출구를 연 후에 주저없이 그 안으로 달어섰고, 곧이어 다른 사람들도 줄줄이 그 뒤를 따라 어둡고 좁은 어두운 통로가 드러났다.
모두가 경지에 이른 고수들이었기에 어둠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또한 가장 선두에 천우가 있었기에 그들은 위험에 대해서도 별다른 걱정 없이 부지런히 앞사람을 쫓기 시작했다.
좁고 구불거리는 통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거의 일반인들이 전력으로 달리는 정도의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로는 예상외로 길어서 대략 한 식경 정도가 지나서야 막다른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천우는 어둠 속에서도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커다란 바위임을 알아보고는 역시 가볍게 밀쳐버렸다.
쿠르르르릉!
커다란 소음과 함께 집채만 한 바위가 밀려나자 외부가 드러났고, 천우는 밖으로 나서며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잡목이 우거진 야산의 중턱쯤 되어 보였는데, 하늘 위에는 비록 만월이 떠 있긴 했지만 빽빽한 잡목들로 인해 달빛이 쉽사리 접근하지 못해 사위는 무척이나 어두웠다. 하지만 역시 천우가 주변을 살펴보는 데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곧이어 천아의 뒤를 따르던 백양신마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줄지어 밖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음! 이곳은 본교에서 중원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야산의 중턱일세. 저 앞에 보이는 얕은 능선 아래쪽이 본교 사람들이 다니는 통행로이고, 저곳부터 본교의 입구까지는 대략 이십여리 정도의 거리일세.
백양신마가 금방 위치를 파악하고 설명을 하는 동안 통로로 들어섰던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섰고, 그들 역시 출구가 천마신교의 외부라는 것에 대해 놀라며 사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천우는 백양신마가 가리키는 능선을 바라보다가 죽립 안에서 이채를 발하며 나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굉장한 인원이로군요.
뭐가 말인가?
백양신마가 반문했지만 천우는 대답 대신 묵월을 돌아보며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묵월 부교주, 우리가 돌아온 길이 아닌 정상적인 길이었다면 황도에서 마편으로 이곳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음'''이동 시간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말에게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빨리 이동하고자 한다면 대략 오십여 일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혼잣말처럼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결국 우리가 떠난 것과 별 차이 없이 출발했다는 얘기로군,묵월은 괜이 무안해져 조금은 어색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변명했다.
그때는 종적을 감추며 움직이느라 부득이 먼 길을 돌 수밖에'''
하지만 천우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을 따지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지금 이곳으로 엄청난 수의 기마행렬과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인원수로 보아 아마도 황군일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 이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들의 출발 시기가 우리와 별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이곳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누군가가 그들을 안내하고 있다는 말도 되겠지요.
난데없는 그 말에 묵월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화,황군?
황군이 왜 이곳에?
천우는 한편에서 괴이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화천악을 스쩍 바라보고는 먼저 신형을 움직이며 말했다.
아직 상당한 거리가 있긴 하지만 일단 가보도록 하지요.
천우가 움직이자 중인들도 의혹스런 표정을 거두지 않은 채 화급히 신형을 움직여 다시 천우의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다 나는 듯이 움직여 백여 리 정도를 더 이동한 후에 중인들은 초원지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천산 초입의 제법 높은 구릉 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저마다 헛바람을 들이켜며 또다시 경악성을 발하기 시작했다.
헛! 저,정말 군대가 몰려오고 있군!
세,세상에 ''''저게 도대체 몇 명이란 말인가?
구릉 위에서 그들은 멀리 보이는 드넓은 초원 위로 그야말로 달빛 아래 새까맣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수의 군마들이 몰려오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음! 중원의 대군이 신강을 가로질러 이곳까지 오다니''''설마 본교와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백양신마의 놀람 가득한 침음성에 천우가 침착한 어조로 대꾸했다.
저들은 저와 제 의형 때문에 온 것입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황제가 군대를 움직였군요.
저들이 곤패주 때문에 온 것이란 말씀이시오?
천우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분노가 가득 담긴 동사왕의 노성이 터져 나왔다.
미친 황제 녀석 같으니 ''''한낱 계집 때문에 정말로 군사를 일으키다니, 이보게 천아우, 저놈들이야 머릿수만 많지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을 테니 자네가 대충 혼내 주고 쫓아버리게, 정 버거우면 마교 녀석들을 동원해도 될 것이고, 나는 단장 이길로 중원으로 돌아가서 그 미친 황제 녀석의 목을 꺾어버리고 오겠네.
그 순간 갑자기 화천악이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그러시면 안 됩니다. 황제의 목을 꺾어버리시겠다니요.그런''''
하지만 화천악은 얼음장 같은 동사왕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자 말끝을 흐렸다.
왜 안 된다는 것이냐? 황제 놈이 네 녀석 피붙이라도 된단 말이냐?
그,그런 것이 아니오라'''아무리 황제에게 조금의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어찌 황제의 백성으로서 그런 대역무도한 일을''''
대역무도는 무슨 대역무도! 그런 미친놈이 황제로 앉아 있으면 오히려 일반 백성들만 괴로울 따름이다. 그러니 그런 녀석의 목은 일찌감치 꺾어버리는 것이 오리혀 천리를 따르는 일이다. 네 녀석이 그런 미친 황제 놈의 편을 들어주겠다면 어디 이 자리에서 노부를 막아보거라, 당장 네 녀석의 목부터 꺾어줄 테니 말이다. 
동사왕의 살기등등한 태도에 화천악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안색마저 퍼렇게 질려갈 때, 천우에게서 다시 침착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한데 조금 이상하군요.
뭐가 말인가?
동사왕이 말을 받자 천우는 여전히 참착한 태도로 말했다.
저 중에는 군사들뿐만 아니라 무림인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림인들? 그놈들이 왜 황군과 함께 이곳에 왔단 말인가? 혹시 우리 때문이 아니라 마교를 토벌하기 위해서 오는 건가?
그 말에 곁에 있던 백양신마가 조금은 언짢은 투로 말했다.
우리가 곤패주를 따르는 이상 자네도 완전한 남남은 아니네 꼭 그런 식으로 말해야 속이 시원하겠는가, 그리고 본교가 무슨 산적 집단도 아니고'''아무튼 저들이 곤패주 때문에 온 것이든 본교를 노리고 온 것이든, 감히 이곳에 온 이상 무사히 돌아갈 수는 없네.
백양신마의 살기 어린 말에 단리종후가 표정을 굳히며 천우를 향해 말했다.
정말 무림인들이 포함되어 있다면 이 늙은이가 가서 먼저 연유를 알아보도록 하겠소, 그리고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그들을 설득해서 돌려보내도록 하리다.
그러자 천우는 심유한 눈길로 단리종후를 응시하며 말했다.
맹주님께서 나서시는 것을 말리지는 안겠습니다만, 곧 이곳으로 정황을 알려줄 사람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니 맹주님께서도 들어보시고 움직이시는 게 더 나을 듯하군요.
이곳으로 정황을 알려줄 사람이 온단 말이오?
단리종후가 놀람과 의문이 섞인 어조로 반문하자 천우는 말없이 시선을 돌려 좌측 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단리종후 역시 그 순간 미약한 기척을 감지했기에 자연스럽게 천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고, 곧이어 동사왕의 입에서 의문성이 터져 나왔다.
저놈들은 또 뭐야?
사람들의 시선이 좌측의 능선 위로 향하자 일단의 무리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모두 회포의 복면을 뒤집어 쓴 모습이었다.
동사왕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회포 복면인들 사이에서 취의궁장 차림의 한 여인이 빠르게 앞으로 나서는가 싶더니, 이윽고 그녀를 선두로 백여 명 가량의 회포 복면인들이 중인들이 서 있는 곳을 향해 나는 듯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동사왕의 입에서는 또다시 놀람성이 터져 나왔다.
아니, 저 여우 계집애가 여기는 어떻게?
선두에서 나는 듯이 달려오고 있는 취의궁장 차림의 여인은 입가를 면사로 가린 상태였지만 다분히 형식적인 듯, 범인의 눈에도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얇은 비단 면사였기에 시력이 뛰어난 중인들은 모두 그녀의 용모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마치 달빛 아래 선녀가 하강한 듯 너무도 아름답고 뇌쇄적닝 그녀이 용모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렇게 중인들이 놀라고 있는 사이에 취의궁장 여인을 비롯한 백여 명의 회포 복면인들이 순식간에 천우와 중인들이 있는곳에 당도했다.
지존을 뵈옵니다.
소녀 세운령이 지존께 문안드립니다.
천우 앞에 당도한 그들은 즉시 천우 앞에 부복하며 짧게 외쳤고, 그 중 취의궁장 차림의 세운령만이 마치 새색시가 낭군에게 절하듯이 날아갈 듯 대례를 올리며 꾀꼬리 같은 어조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 모습에 천우는 죽립 안에서 쓴웃음을 머금으면서도 부복한 자들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얼른 경기를 일으켰다.
문주, 오랜만이오. 설마 문주가 직접 이곳으로 올 줄은 몰랐소,
천우가 발한 무형의 경기에 모두의 몸이 저절로 일으켜 세워졌다.
그 와중에 여전히 담담하면소도 무심한 듯한 천우의 음성을 들은 세운령의 두 눈에는 잠시 서운함이 스쳤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생긋 웃음 지으며 애교 띤 음성으로 말했다.
과연 지존이세요. 저희가 올 줄 이미 알고 계셨다는 말씀이시로군요. 지존의 허락도 없이 함부로 이곳에 온 것을 용서해주세요. 하지만 워낙 다급한 사안이라 제가 직접 오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비록 말은 용서를 구한다고는 했지만 그녀의 태도는 누가 보기에도 교태는 부리는 듯한 모습이었기에 천우는 다시 고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리 알았던 것은 아니오 다만 군사들이 온 것을 보고 문주라면 틀림없이 사람을 붙였을 것이라 짐작했을 따름이오.
지존께서 소녀를 그렇게 높이 평가해 주시니 소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세운령의 그러한 교태 가득한 모습에 중인들은 가슴이 진탕하여 시선을 어디에 둘 줄 몰라 먼 산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바로 조아였다. 세운령의 자태는 같은 여인이 봐도 너무나 아름답고 우아해 보였기에 조아는 절로 지신이 초라해짐을 느꼈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천우를 대하는 태도나 어투로 보아 상당히 가까운 사이일 것이라 짐작되었기에 그녀는 더욱 위축되었다.
실상 용모만으로 따진다면 조아 역시 어떤여인에게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껏 자신의 용모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기울여본 적이 없었고, 또한 여인으로서 치장을 해본 적도 없었기에 너무나 화사한 세운령의 모습을 보게 되자 절로 주눅이 들고 말았던 것이다.
조아가 그렇게 세운령의 화사한 모습에 부러움과 위축감을 느끼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있을 때 동사왕의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계집애야, 교태는 그만 부리고 어서 이곳에 오게 된 연유나 말해 보아라. 보아하니 병사들의 꽁무니를 따라온 모양인데. 저놈들은 도대체 이곳의 위치를 어찌 알았다더냐? 그리고 너는 또 천아우가 이곳에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고?
그 말에 세운령은 밉지 않은 눈길로 동사왕을 한번 흘겨보고는 사근사근한 어조로 대답했다.
지존께서 천 리 안에만 계시다면 저희가 언제든지 찾을 수 있다고 전에 말씁드렸잖아요.
응? 그 천리향인가 하는 거 말이냐?
본문의 비기인지라 다른 사라들은 느낄 수 없지만, 지존과 동 노사님이 가지고 계신 신패에는 그 천리향이 베어 있어요.
그렇구나! 그걸 잊고 있었구나!
동사왕이 가벼운 탄성을 발하는 사이, 세운령은 흑백이 또렷한 눈망울로 빠르게 좌중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의 그러한 눈길을 의식한 천우가 담담한 어조로 말해 주었다.
문주가 모르는 사람들은 천마신교의 사람들이오. 하지만 지금은 같은 편이라 할 수 있으니 달리 의식하지 않아도 좋소.
천우의 말에 세운령은 놀란 표정을 지오 보였지만 아내 대충의 상황을 짐작한 듯 밝은 미소와 함께 얘기를 꺼내었다.
지존께서 군웅들과 함께 천마신교를 향해 떠나신 직후에 황도에서도 20만 가량의 어림군이 출병했어요. 그리고 얼마 후 무림에도, 지존과 동 노사님께서 황실의 성연귀비를 살해하였기에 황명으로 지존과 지존을 돕는 역도의 무리들을 토벌하기 위해 대군이 출병한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어요.
뿐만 아니라 지존께서 천마신교의 곤패주라는 지위를 얻기 위해 무림의 강자들을 속여서 천마신교로 데려간 것이라는 근거없는 소문도 함께 퍼졌어요.
한데 더욱 놀랄 일은 황실에서 천마신교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 바람에 무림에서는 큰 소동이 벌어졌고 곧이어 각지에서 무림인들이 모여들어 비공식적으로 황군의 뒤를 따르게 되었지요.
세운령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저마다 놀람을 드러내는 가운데 단리종후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소저, 그럼 무림인들은 대체 얼마나 합류한 것이오?
소녀가 알고 있기로는 대략 일만여 명 정도의 무림인들이 병사들을 따라 이곳으로 온 것으로 알고 있었요. 그리고  도중에 단리 맹주님의 두 제자 분께서도 탐리목 부근에서 무림인들과 만나 합류하여 다시 이곳으로 온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일만 명이나'''그리고 내 두 제자들도 다시 합류하여 이곳으로 왔단 말이오?
그렇사옵니다. 단리 맹주님,
음! 이 단리 모가 안목이 부족하여 소저의 신분을 알아보지 못함을 용서하시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제라도 소저의 신분을 묻고 싶소만''''
단리종후의 말에 세운령이 표시 나지 않도록 천우를 살펴보고는, 천우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정식으로 예를 취하며 단리종후에게 인사를 올렸다.
소녀는 하오문의 제17대 문주인 세운령이라 하옵니다. 이렇듯 정파무림의 맹주님을 뵙게 되어 무한한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오문!
그녀가 신분을 밝히자 중인들도 모두가 놀람을 금치 못했다.
단리종후 역시 그녀가 하오문의 문주임을 알게 되자 무척이나 놀랐지만, 한순간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 와서 알게 된 것이었지만 이미 일부 정파무림을  제외한 천하무림 전체가 풍검신, 그 한 사람에게 귀속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게다가 천마신교마저 그에게 굴복하여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마당에 정보와 끈질긴 생존력에 있어서는 천하제일이라는 하오문이 풍검신에게 기대고 있다는 것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풍검신 천우가 마음만 먹는다면 무림분만 아니라 천하 자체가 그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단리종후는 절감하고 있었다.
단리종후는 자신이 이곳에 와서 그런 그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을 천만다행이라고 여겼다. 한데 난데없이 정파무림인들이 황군과 합세하여 그런 풍검신을 상대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얘기를 듣게 되자 절로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휴!그렇구려, 이 늙은이가 문주를 몰라 뵌 것을 용서하시오. 그리고 정파 무림인들은 오해 때문에 오게 된 것 같으니 이 늙은이가 설득하여 다시 돌려보내도록 하리다.
그 말과 함께 단리종후가 곧바로 움직이려 하자 세운령이 빠른 어조로 말했다.
단리 맹주님  외람되지만 소녀의 말을 조금만 더 들어주시길 부탁드려요.
단리종후는 무척이나 마음이 급했기에 잠깐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보고는 곧 안색을 펴며 정중하게 말을 받았다.
아무래도 이 늙은이에게 할 말이 있는 듯하구려, 알겠소 문주는 주저하지 말고 어서 말해 보시오.
단리종후가 예의를 갖추어 말하자 세운령은 가볍게 목례를 하며 말했다.
지존께 드릴 말씀이지만 맹주님과도 깊은 연관이 있기에 청한 것이니 부디 소녀의 무례를 탓하진 말아주세요.
곧이어 세운령은 단리종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천우를 응시 하여 본론을 꺼내었다.
그동안 황실의 동태를 살펴보다가 뜻하지 않게 새로운 사실들을 몇 가지 알게 되었어요. 그것은 이번 황군 출정과도 관계가 있는 사항들이기에 그 사실을 지존께 알려드리기 위해 제가 직접 온 거예요.
잠시 말을 멈춘 세운령은 슬쩍 단리종후의 눈치를 살피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먼저 말씀드릴 것은 ''''무림맹에 황실의 첩자가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음! 
그 순간 단리종후로부터 억눌린 침음성이 흘러나왔지만 세운령의 말을 자르지는 않았다.
어차피 무림에 신분을 감춘 황실의 인물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나 무림맹에도 황실의 첩자가 한 둘쯤 있다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크게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무림맹 내부에서는 첩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는 반면, 외부에서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은 과히 유쾌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단리종후는 곧이어 이어진 세운령의 말에 억지로라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다름 아닌 무림맹의 순찰당주 모용휘에요.
뭐,뭣이! 소저, 아니 문주, 그게 정말이오? 그럴리가''''
단리종후의 놀람성이 이어졌지만 그녀는 돌아보지 않은 채 천우를 향해 계속해서 보고 형식으로 말을 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모용가와 성씨만 같은 것이 아니라 실지로도 모용가의 직계 혈족이라는 것이예요. 당연히 성연귀비였던 모용경과도 친족 관계에 있어요.
그 말에 동사왕의 경악성이 뒤따랐다.
뭐라고?계집애야, 방금 무라고 했는냐? 모용휘 그놈이 그 씹어 먹을 모용가의 직계혈족이라고 했는냐?
갑작스런 세운령의 말에 단지종후와 동사왕 모두 경악하고 있었지만 세운령은 대답 대신 바른 어조로 천우를 향해 밝혀진 바라르 얘기했다.
모용세가가 동 노사님께 멸문하기 전 당시 모용가주에게는 서자가 한 명 있었어요. 그는 일찍이 중원으로 나와 독립하였는데, 그의 이름은 모용준이라고 해요. 한데 모용 당주는 바로 그 모용준의 친아들로 밝혀졌어요.
또한 그의 사부는 알려진 대로 한때 중원무린에서 협명을 떨치던 호북검협 사공적 대협임이 틀림없지만, 그 역시도 황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물어었어요. 그는 오래전에 강호에서 은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현재 황궁의 어전 수석 시위장으로 머물고 있음 또한 확인되었어요.
그,그럴 수가!
으드득! 모용휘, 그놈이 모용가의 직계 혈족이었단 말이지. 
또다시 단리종후의 경악성과 동사왕의 이를 갈아붙이는 살기 띤 음성이 이어졌지만 세운령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최근에 모용 당주와 접촉하거나 서신을 주고받은 사람들은 낱낱이 조사해 본 결과, 역시 그들 중에는 동창의 인물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그리고''''그러한 조사 과정에서 무림맹의 중요인사 중 또 한 사람에게서 의심스러운 점이 발견되었어요.
그녀의 놀라운 말에도 천우는 여전히 담담한 기색으로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고, 어느덧 천중에 걸린 둥근 만월이 뿌려대는 휘황한 달빛으로 인해 세운령의 두 눈은 마치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처음에 의심스러웠던 점은 그와 모용당주가 비록 같은 무림맹 내에 있기는 하지만 별다른 친분이나 접촉은 없었는데 최근 몇 달 사이에 부쩍 잦은 접촉이 있었다는 보고 때문이었어요. 그 때문에 혹시나 하여 그의 행적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조사하게 되었고, 그 결과 그에게도 확실히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장내의 인물들이 모두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시킨 가운데 세운령은 별빛 같은 눈으로 여전히 무심히 서 있는 천우를 응시하며 자신감있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우선은 그가 무림맹 자리를 비웠던 지난 몇 년 간의 행적에 대해서 조사해 보았어요, 한데 이상한 것은 그가 어디로 갔는지, 그리고 무엇을 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이에요.
다만 의외의 부분에서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무림맹에서 자리를 비웠을 시기게 천마신교의 첩자로 판명난 사람들도 거의 빠짐없이 거처에서 떠나 있었다는 것이에요. 그들 중에는 일정한 거처가 없던 사람들도 있었기에 전부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일정한 거처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그 기간에 모두 거처에서 떠나 일정 기간 동안 잠적했던 것이 밝혀졌어요.
물론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지난 몇 년간의 행적에서 정확히 일치되고 있는 사항이기에 우연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에요. 그리고 첩자들로 판명난 자들의 행적을 토대로 대시 세밀히 검토해 본 결과, 그들은 그 시기에 일정한 지역에서 모두 모습을 나타냈다는 것도 확인되었어요.
또한 무림맹을 나선 이후의 그의 행적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의심스러운 점이에요. 결국은 그가 변장을 하거나 혹은 전혀 다른 신분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니까요.
그 말에 정파인들의 비리에 대해 그녀와 함께 조사했던 혈리표국주가 검은 피풍의를 두른 채 한쪽에서 고개를 끄덕이자 세운령은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계속 말을 이었다.
소녀는 그러한 점을 토대로 그가 천마신교에서 파견했던 첩자들의 수뇌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천마신교의 곤패주에 대한 소문이나 황실에서 천마신교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 등은 최근 그가 황실의 첩자인 모용 당주와 잦은 접촉이 이었다는 것과 분명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천마신교 측 사람의 도움이 없었다면 동창에서 자체적으로 그러한 사실들을 알아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자 그때까지 한쪽에서 세운령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백양신마가 갑자기 나서며 의문을 표시했다.
잠깐만! 문주의 말대로 본교에 곤패죽라는 신분이 있다는 것이 무림에 알려지고, 황실에서 본교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본교의 사람이 개입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오. 그리고 그것이 그를 통해서 알려진 것이라면 문주의 말대로 그는 분명 본교의 사람일 것이오.
하지만 그가 무엇 때문에 그러한 사실들을 황실에 알려주었단 말이오? 그가 소종사가 파견한 본교의 첩자라면 전혀 그럴 이유가 없을 텐데''''
세운령은 백양신마가 나서자 그 또한 천우를 돕는 천마신교 측의 사람임을 짐작하고는 곧바로 공손한 어조로 대답했다.
소녀로서도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소녀가 알기로 지존께선 천마신교의 양대 세력 중 한 곳인 곤패주라는 신분으로 이곳에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과 관련하여 반대세력 쪽에서 지존을 견제하기 위해 끌어들인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세운령의 말에 백양신마는 가만히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말처럼 소종사가 곤패주를 견제하여 황실을 끌어들였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지만, 어치피 하오문의 문주라는 그녀도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하고 있었기에 나름대로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모용휘의 일로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단리종후가 헛기침과 함께 다소 불안한 표정으로 세운령을 향해 단조직입적으로 물었다.
문주! 도대체 그가 누구요?
세운령은 단리종후의 물음에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단리 맹주님, 들으셨듯이 저희가 조사한 바는 정황 증거일 뿐이지 결코 확실한 증거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소녀는 감히 그가 누구라고 맹주님께 함부로 말씀올리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맹주님께서 알고자 하신다면 그것은 지존께서 결정하실 일일 것입니다.
비록 정황에 대해서 밝히기는 했지만 세운령으로서는 단리종후에게 확실한 증거도 없이 그의 정체를 말하기가 곤란했다. 하지만 천우에게는 의당 보고해야 마땅할 사항이었기에 그 결정을 지존인 천우에게 미룬 것이다.
단리종후는 마음만 먹으면 삼대조 조상의 숨겨놓은 자식까지도 찾아낼 수 있다는 천하제일의 정보력을 갖춘 하오문주가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말을 할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하더라도 분명 그는 천마신교의 숨겨진 첩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단리종후는 은연중에 이미 그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오문주가 이처럼 자신에게 그의 정체를 밝히기를 꺼리는 것은, 그가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거나 혹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했다.
단리종후는 그 때문에 더욱 불안감이 커졌지만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다소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문주의 마음은 잘 알겠소만''''이 늙은이는 지금까지의 얘기만으로도 충분히 신뢰가 가오, 그러니 주저 말고 알려주시오. 설령 오해가 있다 하더라도 이 늙인이는 문주를 탓하진 않을 것이외다. 그리고 이 늙은이 역시 그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보도록 할 것이기에 문주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오,
단리종후의 말에 세운령은 얇은 면사 안에서 가볍게 입술을 깨물고는 여전히 말설이는 기색으로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천우를 주시했다.
그러자 천우도 그녀의 눈길을 의식한 듯 상념을 접고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응시하다가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혹시 그에게 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소?예를 들면 전과 달리 행동거지가 바뀌었다든가 하는''''
천우의 질물에 세운령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것을 어찌'''아니, 그보다 지존께서는 이미 그가 누구인지 짐작하고 계시는 건가요?
다른 이상한 점이 있다면 먼저 말해 보시오.
세운령은 천우가 이미 그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는 듯하자 약간 흥분한 기색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음'''그래요, 하지만 사소한 것들이라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에요. 확실히 보고에 따르면 그의 행동거지나 습관이 조금 바꿔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자면 전에는 용정차를 매우 즐겼는데 최근 몇 개월 동안에는 용정차를 전혀 찾지 않는다든가, 전에는 일어나면 하루도 빠짐없이 연무를 한 후에 아침 산책을 하곤 하였는데 역시 최근 몇 개월 동안에는 개인 연무도 중지한 듯하고 아침에 산책하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고 해요, 그 외에도 식습관이라든가 여러 곳에서 조금씩 전과는 다른 행동들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최근에 천마신교의 첩자들이 모두 밝혀졌고 그로 인해 그 역시 초조함을 느끼게 되었기에 보이는 행동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런 것으로 정황 증거를 삼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여겨졌기에''''
그 말에 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한 어조로 짧게 말했다.
역시 그러군!
단정 짓는 듯한 그 말에 세운령이 은근히 기대감 서린 눈빛을 보내자 천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단리 맹주의 대제자'''한상이라고 했던가?
그 순간 세운령의 입에서는 참지 못하고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지존께서는 어떻게 그라는 것을'''
그 순간, 내심 각오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놀란 나머지 단지종후는 오히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천우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천우의 죽립이 가볍게 좌우로 흔들렸다.
하지만 이미 그가아니오.
네?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세운령이 그 말의 의미를 몰라 의문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자 천우는 대답 대신 광활한 초원에서 몰려오고 있는 병사들 쪽으로 시선을 주며 독백하듯이 중얼거렸다.
거기 있었는가'''대종사.


2장   풀리는 실마리


설명해 줄 수 있겠소'''
하오문주가 먼저 그 이름을 말했다면 단리종후는 절대 인정 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절대 그럴 리 없다며 분명 화를 내었을 것이다.
하지만, 풍검신 천우가 말했다. 자신의 대제자인 한상이라고'''
단리종후로서는 정말로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래도 설명은 듣고 싶었다.
애써 태연한 척하려 하지만 가늘게 경련하는 입술만은 어쩔 수 없는 듯, 충격과 격정에 휩싸인 단리종후를 바라보며 천우는 내심 탄식을 발했다.
하지만 곧 무심한 태도를 유지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를 처음 의식한 것은 무림맹에서 맹주님이 제게 곤란을 겪었을 때입니다. 그에게서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사부가 그런 곤란한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물론 당시에 저는 그런 것에 대해서 특별히 신경을 썼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것을 느꼈을 뿐입니다. 맹주님의 둘째 제자와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 느껴졌으니까요.
두 번째로 그를 느꼈던 것은 이곳에 오면서부터입니다. 그에게서는 예전처럼 항시 감정의 동요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그는 너무나 평범했습니다. 이상하리만치 평범했지요, 그 정도로 감정의 절제가 이루어지는 사람에게서 제가 느낄 수 있는 기운은 너무 평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것이 무척이나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천우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단리종후의  두 눈이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이상함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이곳에 와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소종사란 자처럼 본신의 자아를 완벽하게 숨겨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소종사란 자는 그것이 선천적이었던 것에 비해, 그는 고의적으로 스스로를 완벽하게 감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에게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저는 그의 숨겨둔 힘의 실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제가 무림맹에서 처음 느꼈을 때부터 이미 바뀌어져 있었던 겁니다.
천우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단리종후는 격정을 이기기 힘든 듯 전신마저 가볍게 떨기 시작했다.
그럼'''그 전의 그는''''
단리종후의 띄엄띄엄 이어지는 어조에 천우는 다시 무심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마도 처음의 그는 애초에 소종사와 관련이 있던 사람일 것입니다. 사도련에서 천사혈존의 세 아들 중 한 명이 소종사의 친 혈육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중간에 바뀌었다면 맹주님께서 알아차리지 못해을 리가 없겠지요.
하지만 처음의 그가 천마신교의 사람이 아니었다 해도 지금의 그는 맹주님의 대제자가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저는 지금 너무나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천우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무척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었지만 마침내 천우에 의해 결론이 지어지자 모두들 더할 나위 없는 경악스러움에 제대로 숨도 쉬자 못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결국 천마신교의 대종사는 원래의 첩자 대신 단리종후의 대제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그러한 사실이 쉽사리 믿기지 않았다.
그것은 세운령도 마찬가지였기에, 그녀는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천우를 바라보다가 다급한 음성으로 물었다.
소녀가 비록 그가 천마신교의 숨겨진 첩자일 거라는 정황은 가지고 왔지만 그가 대종사라니'''그럼 현재 천마신교에는 대종사가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천우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세운령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는 살포시 아미를 찡그렸다.
그 순간 천우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백양신마를 돌아보며 다소 엉뚱한 질문을 하였다.
천마신교의 전력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물음에 백양신마는 잠시 곤혹스러움을 느꼈지만 곧 천마신교가 지닌 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음''''본교의 십만 교도 중 강호상의 이류급 고수 이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은 대략 절반에 해당하는 5만 정도일세. 그리고 그 중 일류급 이상은 1만 정도라고 보면 맞을 것이네, 또한 절정급으로 분류할 수 있는 고수의 수는 대략 이천여 명 내외이고, 극마나 화경 이상의 초절절 고수들은 무영사신대를 제외하고라도 이백여 명 정도 될 것일세.
이류급의 고수들은 중원무림 전체에 비하면 많이 모자란 수겠지만 일류고수 이상만 따지자면 중원의 모든 정사문파에 속한 일류고수들을 합한 수에 크게 뒤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네, 그리고 절정고수 이상으로 치자면 오히려 중원무림의 모든 절정고수를 모은다 해도 아마 본교가 보유하고 있는 수만큼은 되지 않을 것일세.
백양신마에 의해 천마신교의 실체가 드러나는 동안 그 말을 듣고 있던 세운령의 두 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백양신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입에서는 다시 경탄성이 터져 나왔다.
과연 천마신교로군요! 그 정도라면 지금 오고 있는 황군이나 중원 무림인들의 수로는 어림도 없는 막강한 전력이라 할 수 있겠어요. 비록 무림인들이 일만여 명 정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 중 일류고수라 할 수 있는 자들은 고작해야 2천을 넘지 않을 테고'''게다가 일반 병사들로는 백여 명으로도 한 사람의 일류고수를 당해 내기 어려우니''''
물론 그가 천마신교의 대종사이고, 황실과 손을 잡은 이상 천마신교 전체를 염두에 두고 출절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너무 과한 수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그러자 백양신마가 냉기가 감도는 음성으로 말했다.
저들이 곤패주를 상대하자면 그것은 본교 전체를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오. 그 이유는 이미 본교 전체가 곤패주께 충성을 맹세한 상태이기 때문이오. 설사 대종사가 개입되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은 천마건곤대전을 치르고 있는 도중이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에는 변함이 없소.
뜻밖의 그 말에 세운령은 물론이고 함께 온 하오문도들도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
그,그것이 사실인가요? 천마신교 전체가 이미 지존께 충성을 맹세했다는 것이''''
그녀는 천우 주위에 있는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도를 풍기는 천마신교 측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천마신교 내의 곤패주쪽 사람들일 거라고 짐작은 했었지만, 설마하니 천마신교 전체가 이미 천우에게 굴복하였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또다시 떠오른 의문이 있었기에 세운령은 여전히 경악한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다시 떠듬거리며 물었다.
그럼'''천마신교의 소종사는 이미''''
그녀의 경악한 태도에 백양신마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렇소, 소종사는 이미 곤패주에 의해 죽었소, 그리고 본교의 천마건곤대전의 율법에 의해 대종사 역시도 현재로서는 곤패주의 위에 있지 않소이다. 대종사와 곤패주 사이에 승부가 나기 전까지는 대등한 위치라고 할 수 있소.
결국 대종사가 황실 이용해 곤패주를 상대할 생각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히려 본교 전체와의 세력전이 될 뿐이오.
하지만 여전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어째서 대종사가 중원의 황실을 끌어들였는냐 하는 것이오. 그것은 대종사가 지금의 상황을 모두 예측하였다 하더라도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고, 단지 곤패주와 황실과의 불화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하더라도 역시 납득하기 힘든 일이오.
그때 천우가 죽립으로 가려진 두 눈에서 가볍게 이채를 발하며 뜬금없는 질문을 하였다.
문주, 모용경 그녀가 죽고 난 후에 황실의 실권을 잡은 사람은 누구요?
그러한 물음에 세운령은 즉시 대답했다.
당연히 현 동창의 수반이 제독태감 조덕인이에요. 그는 당금의 황제가 7왕자였던 시절부터 그의 스승 겸 태사 노릇을 하던 자였는데, 당금의 황제가 성연귀비의 힘을 입어 황제가 된 이후에 동창의 수반이 된 자에요. 엄밀히 말하면 성연귀비의 수족노릇을 하던 자였는데, 그녀가 실종되고 나자 자연스럽게 실권을 잡게 된 것이지요.
그럼 현재 그의 최대 결림돌은 누구라고 할 수 있소?
이미 황제의 권위를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위를 휘두르는 그에게는 별다른 정적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상 대학사는 실질적으로 당금의 황실이나 정체에는 관여하고 있지 않는 상태고''''
다만 당금 황제의 숙부이시자 군기대신인 현영왕전하만은 아무래도 껄끄러울 수밖에 없을 거예요. 현영왕의 성품이 매우 대쪽 같다고 알려진 데다가 군권까지 잡고 있으니 아무리 조덕인 그자라 하더라도 그 앞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죠. 그리고 이번 출정의 총책임자도 바로 현영왕이에요. 한데 갑자기 그러한 것은 어째서''''
황실에서 병사들을 출정시킨 것은 물론 나와 형님 때문이기 하겠지만, 단지 나와 형님만이 목적이라면 20만의 병사들이 출병했다는 것은 문주의 말대로 과한  정도가 아니라 누가 생각하기에도 터무니없는 일이오. 그렇지 않소?
질문과도 비슷한 천우의 착 가라앉은 음성에 세운령은 그가 자신의 말로 인해 기분이 상한 줄 알고 무척이나 당황하며 말을 떠듬거렸다.
소녀는 그런 의미로 드린 말씀이'''
하지만 천우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해는 마시오. 나는 단지 이곳에 온 병사들의 숫자에 관해서 의문이 들었기에 한 말일 따름이오,
천우의 말에 세운령은 금세 안도의 눈빛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확실히''''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해 보면 그렇긴 해요. 하지만'''
그러나 천우는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전히 가라앉은 나직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그리고 천마신교 전체와 비교해 보면 너무 빈약한 전력이기도 하오, 물론 문주의 말처럼 제독태감이란 자가 대종사와 손을 잡았기 때문에, 그리고 제독태감이 그를 믿고 천마신교 전체와는 부딪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단지 20만의 병력만으로 이곳에 온 것일 수도 있소.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제독태감이란 자는 어떤 이유로 대종사를 믿게 되었는가 하는 것과, 대종사는 무엇 때문에 굳이 황실을 끌어들였냐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오.
제독태감이란 자는 나와 형님이 목적일 수 있겠지만, 대종사는 굳이 나와 형님 때문에 황실을 끌어들일 이유가 없소, 백양노사의 말씀처럼 그가 지금의 상황을 모두 예측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황실을 끌어들이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 또한 그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오.
결국 그가 황실을 끌어들인 이유는 나와 형님 때문이라기보다는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고, 그것은 당연히 그에게도 득이 되는 일일 것이오. 달리 말해 그들 서로간에 득이 되는 약속이 이루어졌다면 제독태감은 대종사를 믿을 수 있는 것이오. 또한 그러한 이유로 천마신교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한 전력으로도 이곳에 거리낌없이 올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오.
뭔가 결론이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천우의 말은 충분히 수긍이 간다는 듯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처음에 말했듯이 대종사를 믿고 있는 그가 나와 형님만을 상대하기 위해 20만이나 되는 병력을 동원했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소, 또한 그러한 것은 대종사에게 아무런 득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말이오.
그 말에 세운령은 조금 전에 하려다 못 한 말로 의문을 표시했다.
하지만 ''''지존께서는 이미 고금제일이란 호칭을 듣고 계시고 또한 실제로도 그렇지요. 그러한 지존의 소문을 듣지 못했을 리 없으니 조금 많기는 하지만 그 정도의 병력이 동원된 것도 전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대종사의 목적이나 득이 되는 부분에 있었서도 그 역시 지존에 대한 소문을 접했을 테니 황실을 통해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니지 않겠어요?
세운령은 조금 전 스스로 했던 말에 대해 마음에 걸리는 부분을 떨쳐내지 못했기에 의식적으로나마 천우를 높이는 형식으로 궁금증을 표시했다.
천우 역시 그러한 그녀의 마음을 읽었기에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나 역시 짐작일 뿐이니 문주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소, 그리고 그에게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라면 달리 고려해 볼 여지도 없이 한 가지 이유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한 말이기도 하오,
그것이''''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소, 지금 보이는 상황 자체가 바로 그가 원한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오. 즉 대종사는 황실의 20만 군사들이 출정하기를 원했던 것이고, 그것이 목적일 수 있다는 것이오.
하지만 세운령이나 중인들은 천우의 그 말로 인해 오히려 더욱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다만 동사왕만은 무언가를 느낀 듯 얼굴 가득 경악을 드리운 채 천우에게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이보게, 천 아우! 설마 자네 말은 그의 목적이 저들 20만 군사들의 목숨에 있다는 말인가?
확실하진 않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그런'''그가 무엇 때문에'''혹시 대종사도 그놈들처럼'''
천우는 동사왕의 경악한 물음에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것이 긍정의 의미임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고, 그러한 동사왕의 경악스런 외침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이곳으로 오기 전 기환노조를 겪었던 몇몇 사람들도 천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렴풋이 느끼고는 안색을 굳혔다.
곤패주!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대종사가 저들 20만 군사들의 목숨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그리고 그놈들이라는 것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아무 영문을 모르는 백양신마의 이어진 물음에 천우는 은연중 눈빛을 침잠시키며 말히기 시작했다.
대종사는 연무관에서 천마가 남긴 흔적을 얻었지만, 천마의 흔적은 그곳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천마는 중원에도 비슷한 흔적들을 남겼고, 그것을 접한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마의 흔적을 얻은 그들 두 사람은 많은 피와 원령들을 원했습니다. 때문에 저는 대종사 역시도 마찬가지일 수 있으며 그것은 아마도 천마가 남긴 또 다른 무언가를 얻기 위한 방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그럴 수가! 천마 조사가 중원에도 무언가를 남겼다니'''
금시초문의 말에 백양신마와 천마신교의 사람들이 놀라는 동안 세운령은 모용경과 북천검왕 여우명에 대한 일을 알고 있었기에 동사왕 등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사태를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수긍이 가는 것은 아니었기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다시 천우에게 물었다.
외람되지만 지존의 말씀대로라면 적어도 제독태감은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대종사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라지만 20만이나 되는 황실 어림군들을 목숨을 대가로 한다는 것은 '''과연 그러한 거래가 서로에게 득이 되는 거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이번 출정의 책임자는 현영 왕야이신데, 왕야는 그러한 일을 결코 용납할 리도 없겠지만, 그가 모르는 상태라면'''
말을 이어가던 세운령은 갑지기 떠오르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말끝을 흐리며 그 커다란 눈을 더욱 크게 뜨고 말았다.
호,혹시 ''제독태감의 목적 역시도''''
그녀의 다급성에 천우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 그러한 거래가 있었다면 현영왕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소, 그리고 제독태감이라는 자가 모용경과 관계되어 일을 해오던 자라면 결코 황실에 대한 충성이 깊은 자는 아닐 것이오. 그런 그가 황실의 20만 병사의 희생으로 나와형님의 처리뿐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는 정적까지 제거할 수 있다면 그로서는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닐 것이오.
세운령은 하오문의 문주로서 세상의 험난함과 추악함을 모르는 여인이 결코 아니었기에 그 순간 모든 상황을 명확히 깨달을 수가 있었다.
천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한쪽에서 완전한 사색으로 물들어 있는 화천악에게로 시선을 주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의 신분이 황실의 호국천위왕이라 들었소만'''어떻소, 저들을 설득하여 돌려보내는 것이?
화천악은 천우의 갑작스런 말에 그야말로 대경하여 펄쩍 뛰다시피 하며 뒤로 몇 발짝 물러서서는 핏기 없는 안색으로 천우을 가리키며 떠듬거렸다.
어,어떻게'''내 신분을''''
당신이 단리 맹주의 두 제자들에게 하는 말을 들었소,
그,그럼'''
당신이 그들에게 하는 말을 듣고 황군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소, 하지만 그들이 돌아가서 소식을 전하고 황군이 오려면 상당한 기일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상황일 줄은 미처 몰랐소,
아무튼 귀하도 모든 얘기를 들었을 것이오. 그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귀하의 몫이오. 하지만 쓸데없는 희생은 줄이는 것이 졸을 것 같기에 귀하에게 부탁하는 것이오.
화천악은 천우의 무심한 시선에 애써 경악스러움을 가라앉히면서 깊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휴! 설마 했는데 정말로 귀하가 전음으로 하는 말을 모두 들었을 줄은 몰랐소, 하긴, 귀하의 능력이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아무튼 이제라도 내 신분을 정식으로 밝히겠소,
나는 황실을 수호하는 호국천위왕의 신분에 있으며, 사실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귀하를 따라왔던 것이오. 물론 그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는 충분히 통감하고 있고, 더불어 단리 맹주님의 두 제자 분에게 그러한 부탁을 했던 것도 후회하고 있었소,
변명이 아니라 나는 이곳에서 돌아가는 즉시 현영 왕야와 황제폐하를 찾아뵙고 출병을 적극적으로 말릴 생각이었소, 한데 예상치 않게 이토록 빠른 출병이 이루어지다니 나로서도 정말 뜻밖이오.
그의 신분이 밝혀지자 주변에서 다시 놀란 시선으로 화천악을 바라보았지만, 누구도 지금의 상황에서 그에게 황실의 왕야에 대한 예를 갖추는 사람은 없었다.
천우는 그런 화천악을 바라보며 여전히 무심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귀하의 신분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소, 그리고 그것은 황제라는 자도 마찬가지요. 다만 더 이상 황제와는 부딪치지 않길 원하기에 귀하에게 부탁하는 것이오. 그것은 황제가 두렵기 때문이 아니라 그로 인해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오. 그러니 귀하가 가서 저들을 돌려보내고 황제라는 자도 설득켜 주면 고맙겠소,
천우의 말에 화천악은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이곳에서 왕야의 신분을 내세우고 싶지는 않았소, 그리고 더욱 남감한 것은 귀하의 말대로 군사들을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내게는 그럴 만한 권한이 없다는 것이오.
비록 내가 호국천위왕이라는 신분이기는 하지만 황실의 혈통은 아니오, 다만 본문의 시조께서 건국의 태조와 연이 있으셨기에 그러한 신분이 주어졌던 것이고, 이후로 호천문의 문주에게는 호국천위왕이라는 신분도 함께 이어졌던 것이오.
하지만 선사 때부터는 황실의 일에 관여하지 않았기에 황실에서도 호국천위왕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황제폐하는 만나 보지도 못한 생태요.
다만 선사께서 황실을 위해 한번은 도움을 주라는 당부가 있었기에 이번 일에 주제넘게 나서게 되었던 것이고, 또한 현영왕전하만을 만나 뵙고 신분을 밝혔을 따름이오. 그러니 왕야의 신분이라고는 하지만 황제의 명을 받아 출병한 군사들을 회군시킬 권한은 없는 것이오.
화천악이 솔직하게 자신에 대해서 밝히고 권한 밖의 일임을 말했지만 천우는 변함없는 태도로 그를 주시하며 말했다.
그럴 수 없다면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오.
그 말에 화천악의 안색이 다시 석고상처럼 굳어졌다.
나는 아직 이해할 수 없지만 방금 전 귀하의 말대로라면 애초에 병사들을 희생시킬 목적을 지닌 사람은 바로 천마신교의 대종사가 아니겠소,
하지만 지금 천마신교는 모두 귀하에게 충성을 맹세한 상태이고, 대종사라는 자도 분명 그러한 것을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오. 즉, 귀하가 나선다면 오히려 대종사라는 자도 별달리 손을 쓸 수 없는 것 아니겠소.
염치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나는 귀하가 나서서 대종사라는 자의 뜻대로 되지 않도록 해주길 부탁드리고 싶소, 그리고 귀하라면 병사들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쫓아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소, 귀하가 사정을 보아주신다면 나는 현영 왕야와 함께 목숨을 걸고서라도 황제폐하께 간하여 더 이상 귀하를 적대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보겠소.
천우는 화천악의 말에 잠시 생각해 보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 하지만 대종사와 연루된 제독태감이라는 자는 돌아갈  수 없소, 오히려 그가 없는 것이 귀하가 황제를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오.
하지만''''그가 현영 왕야를 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것은 단지 추측일 뿐이지 않소, 명확한 증거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그를 해친다면 오히려 황제페하를 설득시키는 데 더욱 어려움이 따르게 될 것이오.
하지만 천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자요. 하지만 귀하의 말처럼 명분은 필요할 것이오. 그래서 하는 말이오만''''그가 본색을 드러내도록 하기 위해서는 귀하의 도움이 필요하오.
화천악은 자신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천우의 말에 움찔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호기롭게 말했다.
귀하의 말이 모두 사실이고 또한 그의 음모가 밝혀질 수 있다면 당연히 나설 것이오.내가 어찌하면 되는 것이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오. 단지 귀하가 가서 이곳의 일이 모두 처리되었다고 말하고 회군을 요청하면 되는 것이오.
그 말에 호기롭던 표정을 짓고 있던 화천악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그럼 나보고 '''' 가서 거짓말을 하라는 것이오?
거짓말은 아니오. 귀하의 목적은 황실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고, 나는 분명히 황실과 더 이상 부딪치길 원치 않는다고 했으니 이곳의 일은 처리된 것이나 다름없소, 다만 그들은 다른 의미로 생각하겠지만'''''
음'''내가 이곳의 일이 처리되었다고 말하면 더 이상 병사들을 이끌고 천마신교로 향할 이유가 없어지게 되니 제독태감이나 대종사라는 자가 본색을 드러낼 것이라는 말이구려, 알겠소, 그렇게 하리다.
화천악은 떨떠름한 기색을 감추지는 못했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도 천우의 말이 모두 사실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그 방법 외에는 달리 없을 것 같았고, 또한 그러한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에는 현영왕도 천우에게 은혜를 입게 되는 것이기에 황제를 설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그때, 한쪽에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던 단리종후가 나서며 말했다.
이 늙은이 역시 함께 가도록 하리다.
천우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단리종후는 깊숙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천우를 보며 다시 말했다.
비록 내 제자가 천마신교의 첩자였다고는 하나, 그가 죽고 대종사라는 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라면''''일단은 이 늙은이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생각이오.
천우는 단리종후의 모습에서 무한한 분노를 느낄 수 있었기에 다시 한 번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모용휘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두 눈에 이글거리는 분노를 담고 있는 의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께서도 잠시 한 노사가 되어주셔야겠습니다.
갑작스런 천우의 요청에 동사왕이 흠칫하며 그를 바라보자 천우는 항상 깊숙이 눌러쓰고 있는 자신의 낡은 죽립을 향해서 천천히 손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 모습에 기대와 호기심이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는 동안 천우는 천천히 죽립을 벗어 들었고, 어느새 그의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베일 것 같은 날카로운 인상의 냉무심이 되어 있었다.
엇!
절세미남자라 들었는데''''
듣던 바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천우의 진면목을 보지 못했던 천마신교의 사람들이 가벼운 경호성을 발하는 기운데, 동사왕도 천우가 한 말의 의미를 파악하고는 곧이어 만체변용술을 이용해 평범한 중늙은이 모습인 한 노사가 되었다. 그제야 사람들도 천우의 얼굴이 변용한 모습임을 알아차리고는 아쉬운 감을 드러내었다.
천우는 냉무심의 모습으로 죽립을 벗어 든 채 한편에서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혈살대주 서귀명을 바라보며 지시를 내렸다.
서 대주는 수고스럽겠지만 이 길로 돌아가서 천마신교의 고수들을 전부 이리로 집결시키도록 하시오.
그 말에 서귀명을 비롯해 주위 사람들이 흠칫 놀라며 천우를 바라보았다.
본교의 고수들을 말입니까?
그렇소, 
얼마나'''
가능하면 많을수록 좋소.
알겠습니다.
그 즉시 혈살대주 서귀명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신형을 틀어 천마신교가 있는 쪽으로 빠르게 쏘아 나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화천악이 놀라서 다소 걱정스런 어투로 물었다.
어째서 천마신교의 고수들을 ''''
걱정 마시오. 그들이 싸움에 가담하게 될 일은 없을 것이오. 다만 필요하다면 천마신교의 실체를 보여주려는 것뿐이오.
그렇다면 몰라도''''
그 말에 화천악은 안도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주위 사람들도 천우가 한 말의 의미를 단지 황군이나 정파 무림인들에게 천마신교의 실체를 보여주어 겁을 주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의미가 단순히 정파 무림인들이나 병사들에게 천마신교의 실체를 보여주겠다는 의미가 아니었음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수상한 자들이 오고 있습니다.!
환한 달빛 아래 진군을 멈춘 채 숙영 준비를 하도록 지시한 현영왕은 호위 무장의 말에 고개를 돌려 전면을 응시했다.
이미 현영왕의 주위로는 호위무장들이 경계태세를 갖춘 채 서 있었고,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제독태감 조덕인과 동창의 고수들도 예리하게 눈을 빛내며 다가서는 자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인영들이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현영왕은 가장 선두에서 쏘아오고 있는 자가 화천악임을 알아보고는 반가운 기색을 띄우며 앞으로 나섰다.
전하, 위험합니다.
그 모습에 호위무장 중 하나가 다급성을 토하자 현영왕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 선두에서 오고 있는 사람은 본왕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니 걱정할 것 없다. 또한 그는 본왕과 같은 왕야의 신분이기도 하니 그대들은 함부로 무례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현영왕의 말에 주위 사람들이 놀라는 가운데 유독 창백한 안색을 지닌 제독태감 조덕인이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현영왕을 향해 물었다.
전하, 황실에 소신이 모르는 왕야가 계신단 말씀이십니까? 조덕인은 일신의 공력이 뛰어나 멀리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화천악을 필두로 뭇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데 선두의 인물은 그에게 낮선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현영왕이 같은 왕야의 신분이라고 하자 의문을 표시한 것이다.
제독태감도 들어보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호국천위왕이란 신분으로 본 황실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사람일세. 제국 성립 초기에 건국 황제에 의해 정해진 신분으로 몇 대에 걸쳐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 일로 인해 그가 본왕을 찾아왔네, 아마도 신분을 감추고 역도들과 함께 이곳으로 왔던 모양인데. 이곳에 나타난 것을 보니 우리가 오는 줄 알고 빠져나온 모양일세.
현영왕의 말에 조덕인은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으로는 의구심과 함께 무척이나 놀라고 있었다.
그 역시 황셀의 수호자 역할을 한다는 호국천위왕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현영왕의 말처럼 지난 몇 대에 걸쳐 황싱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호국천위왕의 존재가 단맥되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데 갑작스럽게 호국천위왕이란 존재가 이곳에 나타났으니 조덕인으로서는 놀랍고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조덕인이 더욱 안력을 돋우며 쾌속하게 쏘아오고 있는 화천악과 나머지 인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가장 선두에서 오고 있는 호국천위왕이라는 인물은 한눈에 보기에도 애송이에 불과했고 그 뒤로 보기만 해도 섬뜩한 인상을 지닌 흑의 청년과 복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낡은 죽립을 쓴 인물, 그리고 평범한 인상의 중늙은이가 전부였다.
그러나 선두의 호국천위왕이라는 애송이도 그렇지만 그 뒤를 따르는 3인의 움직임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 조덕인은 은연중에 눈살을 한껏 찌푸렸다. 범상치 않은 무공을 지닌 저들이 만약 호국천위왕이라는 애송이의 수하들이라면 자신에게 성가신 존재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조덕인이 다가서는 그들을 주시하며 내심 이런전런 궁리를 하는 동안 천우와 동사왕 그리고 단지종후는 군영에서 오 장여 정도 앞에서 멈추어 섰고, 화천악만이 진영 앞쪽으로 나서 있는 현영왕에게 가까이 다가서서 포권으로 가벼운 예를 취하였다.
왕야를 이토록 빨리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한데 어찌 이토록 빨리 출정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까?
이미 어느 정도는 내막을 알고 있는 화천악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그렇게 인사를 겸한 질문으로 예를 올리자 현영왕은 그 물음에 가벼운 웃음을 발하며 대답해 주었다.
하하! 나 역시 자네의 무사한 모습을 보게 되어 기쁘네, 다행히도 동창에서 마교의 위치를 파악해 두고 있었다고 하는 구먼, 한데 저들은'''''
중원에서 저와 함께 온 일행들입니다. 그보다 제가 알기로 황도에는 많은  수의 군사들이 집결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사온데 어찌 기마병들만을 이끌고 온 것입니까?
화천악이 일단 일행들이라고 대충 얼버리무고는 다시 질문을 하자 현영와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으로 다시 그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제독태감의 말로는 풍검신이라는 자가 마교라는 패악한 무림 단체에서 높은 신분을 지닌 자라고 하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신분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서 이번에 중원의 무림인들을 꾀어 데려가 공을 세우고는 정식으로 신분을 인정받음과 동시에 마교의 세력을 얻으려 한 것이라고 하였네, 때문에 역도인 그가 세력을 규합하기 전에 그를 섬멸하기 위해 이곳까지 서둘러 오자니 말을 다룰 줄 아는 황실 어림군 소속의 정예병들만을 이끌고 급히 오게 된 것일세.
현영왕의 말에 화천악은 가볍게 이채를 발하며 말했다.
그렇군요. 정확히 맞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무튼 그러한 부분까지 동창에서 파악하고 있었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하지만 왕야께서는 더 이상 그곳으로 향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화천악의 갑작스런 말에 현영왕이 놀라 반문하자 화천악은 태연스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황제페하께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회군을 하셔도 무방하다는 말입니다.
화천악의 말에 현영왕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다가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기에 다시 물었다.
그럼''''자네가 이미 그 역도들을 모두 처리했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곳에서의 일이 모두 처리되었으니 더 이상 마교로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화천악의 대답에 현영왕은 조금 어떨떨해 하다가는 이내 기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허! 그런'''''아무튼 그리 되었다면 정말 잘된 일일세. 자네로 인해 벼다른 피해 없이 황제폐하의 금심거리가 사라졌으니 그 공이 결코 적지 않네, 그리고 황실의 어림군이 오랫동안 황도를 비우는 것도 그리 바람직한 일은 못 되니 자네의 말대로 날이 밝는 대로 서둘러 회군하도록 하세.
현영왕이 유쾌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회군을 결정하는 순간 갑작스럽게 뾰족한 음성이 장내에 울려 펴졌다.
현영왕 전하 그건 안 될 말입니다.
강경함이 느껴지는 그 어조에 현영왕이 굵은 눈썹이 꿈틀거리며 그 뾰족한 음성의 주인공을 향해 은은한 노기를 담은 시시선을 옮겼다.
무슨 말인가, 제독태감, 이미 역도들이 처리되어 회군하겠다 는데 어째서 안 될 말이라는 것인가?
그 순간 유달리 창백한 안색을 지닌 제독태감 조덕인이 현영왕에게 새삼 예를 취하며 다급히 말했다.
비록 천위 왕야께서 역도들을 처리했다고 말씀하시지만 확인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더구나 황제폐하의 명을 받들어 출정한 이상 역도들의 수급도 없이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천위 왕야의 말씀대로 정말 역도들이 처리되었다면 가서 그들의 수급이라도 베어와야 마땅할 것입니다.
조덕인의 말에 현영왕은 여전히 노기 어린 눈길을 거두지 않은 채 위엄이 서린 어조로 말했다.
그는 황실의수호자인 호국천위왕일세. 그가 처리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지, 무슨 수급 따위가 필요하단 말인가! 본왕은 날이 밝는 대로 회군할 것이니 그리 알도록 하게.
현영왕은 사실 황제의 명으로 어쩔 수 없이 대군을 이끌고 출정하기는 했지만, 이런 일로 황도를 수호하는 어림군 전체가 이먼 변방까지 오게 된 것을 무척이나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또한 그러한 출정 뒤에는 제독태감의 부추김이 있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에 역도들이 처리된 시점에서 굳이 더 이상 날짜를 허비해 가며 이곳에 머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제독태감의 요청을 들어줄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더구나 따로 알아본 바에 의하면 마교라는 곳은 중원무림 전체가 두려워할  정도로 실로 강대한 세력을 지닌 패악무도한 자들이었고, 역도의 무리가 그러한 곳의 수뇌 중 한 명이라면 아무리 내부 세력 간의 갈등이 있다 하더라도 잘못하면 마교 전체와 시비가 벌어질 가능성도 높았다.
그러한 위험성이 있기에 제독태감 역시 동창의 인물들뿐만 아니라 20만 대군의 출병을 황제께 요청한 것이겠지만, 이미 목적을 완수한 이상 그런 패악한 강호의 무리들과 쓸데없이 시비를 벌여 큰 피를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 순간 조덕인은 갑자기 나타나 일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화천악을 당장에라도 쳐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 창백한 안색을 더욱 희게 만들며 다시 현영왕에게 말했다.
전하! 자고로 역모죄를 범한 역도에 대해서는 국법으로도 그 삼족을 멸하며, 그들이 속한 단체 역시도 같은 역도의 무리로 보고 모두 처단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풍검신은 마교에서도 곤패주라는 높은 신분을 지닌 자입니다. 그러나 비록 그가 처단되었다 하더라도 그가 속해 있던 마교 역시 죄를 물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다면 어찌 지엄한 황제폐하의 위험을 세울 것이며 또한 국법의 엄정함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현영왕은 평소 무능한 황제를 등에 업고 국법을 무시한 채 무소불위의 권위를 행사하던 제독태감 조덕인이 자신 앞에서 감히 국법의 엄정함을 논하자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애초에 어림군들만으로 급히 출병을 한 이유는 역도들과 그들을 돕는 소수의 무리들을 급히 처리하기 위함이며, 결코 마교 세력 전체와 싸우게 될 일은 없을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어차피 마교는 세력이 갈라져 있고 역도들은 그 중 소수의 세력에게만 비호를 받고 있기에 역도들을 처리하는 데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제독태감 자네인데, 이제 와서 마교 전체를 역도로 규정하여 그들 전부를 처단해야 한다니'''''''지금 자네는 나를 우롱하려는 것인가?
비록 현영왕은 제독태감의 그러한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지금 상황에서는 회군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러한 제독태감의 말을 구실삼아 역정을 내었던 것이다.
조덕인은 현영왕의 노기 가득한 목소리에 움찔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곧 태연한 신색으로 말했다.
어찌 소신이 감히 전하를 우롱할 수 있겠습니까. 소신은 분명 그렇게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하지만 역도들을 처리함에 있어 그 세력이 커지기 전에 우선 당사자들을 처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기에 처음부터 굳이 무리해서 마교 전체를 상대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당사자들을 처리하고 나면 다음 수순은 당연히 관련 인물들에 대한 색출과 함께 처벌이 뒤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한데 이미 당사자들이 처리되었다면 그 후속 조치가 이루어져야 함이 마땅하옵고, 지금이 그러한 상황임을 말씀드리는 것이옵니다.
분명 말을 바꾸는 행동이었지만 그 말 자체로는 타당성이 있는 말이었고, 나중에라도 돌아가서 그러한 것을 걸고넘어진다면 또다시 줄정이 이루어질 것이 뻔했기에 현영왕은 분노한 와중에도 별달리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현영왕이 노기 띤 표정으로 조덕인을 노려보고 있을때 화천악이 나서며 약간은 비웃음조의 어투로 말했다.
그대가 바로 당금 황실에서 나는 세도 떨어뜨린다는 권세를 지닌 제독태감이시구려, 만나서 반갑소이다. 한데 제독태감께서는 지금이 그러한 후속 조치를 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본왕은 그 말에는 동의할 수 없을 것 같소이다.
애초에 마교 전체를 염두에 두지 않고 20만 어림군만으로 출정한 마당에 소기의 목적이 이루어졌다면 마땅히 물러선 후에 다시 전열을 재정비하여 다음 일을 진행해야 옳은 것 아니겠소?
내 말은, 애초에 마교 전체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 전력으로 출정이 이루어진 마당에 어째서 무리하게 지금이 마교 전체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우기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이오. 그대는 동창의 수반이라는 직위에 있으면서도 그러한 전술의 기본도 모른단 말이오?
이,이 찢어죽일 천방지축 애송이 녀석이 감히!
조덕인은 화천악의 모욕적인 말에 하마터면 입 밖으로 튀어 나올 뻔한 욕설을 간신히 삼키며 분노를 억누르느라 파들거리는 입술을 간신히 떼어 말했다.
천위 왕야! 말씀드렸듯이 우선적으로 역도의 무리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서둘렸던 것이고, 또한 그러한 의미로 굳이 처음부터 마교 전체를 상대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였던 것이지 결코 이곳에 온 병력이 모자란 것은 아니옵니다. 소신은 지금의 전력이면 마교의 무리들을 토벌하는 것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소? 하지만 그것은 제독태감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오. 왜냐하면 본왕은 마교의 전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오. 지금의 전력으로 마교와 싸운다면 전멸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오. 그러니 적절한 상황도 아니고, 제독태감의 생각처럼 충분한 전력도 아니오.
화천악의 그러한 말에 현영왕은 노기가 가시지 않은 와중에도 궁금증을 드러냈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마교에서 역도들을 직접 처리하고 왔으니 마교의 전력에 대해서도 살펴보았겠군, 한데 도대체 마교라는 단체가 어느 정도의 전력을 지니고 있기에 그렇듯 단언하는 것인가?
비록 긍정적인 방향으로 묻고 있는 질문이었지만 그렇게 묻는 현영왕의 표정에는 화천악의 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 은연중에 드러나 있었다.
화천악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즉시 안색을 굳히며 심각한 어조로 대답했다.
천마신교에는 자그마치 십만에 달하는 문도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 어린아이부터 시작해서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고, 제가 직접 본 일류고수 이상의 수만 해도 족히 일만에 헤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위 강호에서 말하는 초절정 이상의 고수들도 2백 명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한 전력이면 중원무림 전체와도 충분히 자웅을 겨룰 만한 전력일 뿐만 아니라, 설사 백만대군이 출정했다 하더라도 감당히기 쉽지 않은 전력입니다. 그런데도 제독태감의 주장대로 20만의 병사들만으로 미교 전체와 싸워야 한다면 그것은 집단 자살 행위와 다를 바 없는 것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화천악의 말에 궁금증을 드러내던 현영왕의 얼굴이 경악으로 인해 굳어지면 말조차 떠듬거릴 정도였다.
그,그 정도란 말인가. 마교라는 집단이''''
그렇습니다. 왕야, 물론 정말로 백만대군이 전부 출정하여 대규모 군사 작전을 통한 집단 전투를 벌인다면 그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겠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전력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독태감의 말과는 달리 한시라도 빨리 물러서야 할 정황인 것입니다.
비록 정말로 지금 회군이 이루어져서는 곤란하겠지만, 화천악은 솔직한 심정으로 진실을 얘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얘기를 들은 조덕인은 너무나 분통이 터져서 이제는 아예 노골적으로 원독이 가득한 눈길로 화천악을 노려보며 마치 교성과도 같은 날카로운 음성을 발하기 시작했다.
소신은 왕야의 그 말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비록 마교의 교도수가 십만에 달한다고 하나 그들 중에 일류고스들의 수가 1만 이상이나 된다는 말은 무림인 누구에게 물어도 터무니없는 숫자라 할 것입니다.
중원무림의 전통있는 거대 방파라 해도 그 중에 일류고수라 칭할 수 있는 자들은 일대제자들 이상 중에서도 특출한 재능이 있는 자들만이 이룰 수 있는 성취로, 아무리 많아야 문도수의 10분의 1을 넘지 않습니다. 그리고 웬만한 방파들이라면 그 비율은 수십 분의 일도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초절정 고수로 분류되는 극마나 화경급의 고수라면 중원무림 전체를 따져도 백여 명이 있을까 말까 한 숫자인데. 어찌 십만의 교도 중에 1만에 달하는 일류고수들과 이백여 명이 넘는 초절정 고수들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당연히 천위왕야의 말씀은 상당히 비약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온 사람들은 단순히 병사들뿐만이 아닙니다.
일류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천여 명이나 되는 동창의 고수들과 역시 상당수가 일류고수들로 구성된 무림맹의 인물들, 그리고 각지의 실력있는 무림인들이 일만여 명 이상이나 저희를 따라 왔습니다. 이 정도의 전력이라면 왕야께서 말씀하신 상당히 비약된 마교의 전력과 부딪쳐도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직접 부딪쳐보기 전에는 알 숭 없는 말뿐인 상황이었기에 조덕인도 지지 않고 나름대로 설득력있는 반론을 제기했다.
화천악은 조덕인이 쉽게 물러서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왕야에 대한 예의도 생략하며 하는 말에 그 또한 화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코웃음을 발하였다.
흥! 제독태감께선 아무런 근거도 없이 함부로 본왕의 말을 허튼소리로 치부한단 말이오? 더구나 무림인들은 전통적으로 황실의 일에 관여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그들이 도움을 줄 것이라고 자신한단 말이오. 만약 지금이라도 무림인들이 그냥 먼저 돌아가겠다고 한다면 그 땐 어찌할 것이오. 그때도 제독태감께선 충분한 전력임을 말할 수 있겠소?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중원의 정파 무림인들로, 마교와 오랜 세월 동안 적대 관계에 있던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도 정파물림의 맹주가 역도이자 마교도인 풍검신의 계략에 빠져 위험에 처한 것을 알았기에 분노하여 온 자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어찌 쉽게 그냥 돌아갈 리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저희가 마교와 싸울 때 분명히 힘을 보탤 것입니다.
이제는 내심의 분노가 극에 달해 거의 무표정한 기색을 하고 있는 조덕인이 그렇게 말하자 화천악은 혀까지 차며 어쩔 수 없다는 어투로 말했다.
쯧쯧쯧! 제독태감께서 이렇듯 끝까지 억지를 부리시니 증거를 보여 본왕의 말이 사실임을 확실히 밝혀야 하겠구려.
하지만 본왕이 확실한 증거를 보여 제독태감의 말이 모두 잘못된 것임을 밝힌다면 그때는 단순히 본왕과의 견해 차이가 있었던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독태감이 정말로 중대한 실수를 범한 것이 되고, 또한 고의적으로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려 했다는 죄가 성립될 수도 있소, 그때는 제독태감께서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셔야 할 텐데''''어떻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마교와 싸워야 하며, 지금의 전력으로도 충분하다고 억지를 부리실 참이오?
화천악의 그러한 말에 조덕인은 내심 흠칫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무시하며 속으로 냉소를 발했다.
흥! 지금의 상황에서 네놈이 무슨 재주로 증거 따위를 보일 수 있단 말이냐?어차피 직접 마교와 부딪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빌어먹을 애송이 녀석, 머지않아 네놈은 기필코 내 손으로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조덕인은 내심 화천악에 대한 살심을 굳히며 이를 갈았지만, 대놓고 내색할 수는 없었기에 여전히 무표정하게 굳어진 안색으로 말했다.
정말로 소신의 생각이 틀린 것이라면 소신은 당연히 그 책임을 질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부딪쳐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고, 또한 그 결과 역시 소신의 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때는 왕야께서도 명백히 역도의 무리들을 옹호하려 한 것이 되기에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책임을 지셔야 할것입니다.
화천악의 엄포에 조독인 역시 지지 않고 은근한 협박으로 맞섰다.
결과는 호국천위왕이라는 애송이의 말이 옳았다는 것으로 드러나겠지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제외한 모두가 결코 이곳에서의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에 조덕인으로서는 얼마든지 장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화천악은 그 속셈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내심 냉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되도록이면 청하지 않으려 했습니다만, 상황이 이러하니 아무래도 단리 맹주님께서 나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순간 태연을 가장하고 있던 조덕인의 안색이 급변하고 말았다.
단리 맹주라니? 설마!
조덕인이 내심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 순간, 결코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본인도 왕야가 하는 말과 제독태감이 하는 말을 모두 들었소만, 확실히 제독태감은 이곳에 온 병사들과 무림인들까지 모두 위험에 빠트리려 하고 있구려,
때문에 이 늙은이도 왕야가 했던 말들이 모두 사실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그리고 무림인들 또한 황실의 일에 개입하여 싸움에 끼어들 이유가 없으니 이 늙은이가 나서서라도 모두 돌아가도록 할 것이외다.
그때까지 화천악의 뒤편에서 천우의 죽립을 깊숙이 눌러쓴 채 묵묵히 서 있던 단리종후가 천천히 걸어 나오며 그렇게 말하자 조덕인은 마치 학질에라도 걸린 양 전신에 잔 경련을 일으키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떠듬거리기 시작했다.
어찌''''그가 이곳에''''
단리종후가 나타나자 조덕인은 그제야 일이 정말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애초의 예상대로라면 무림맹주인 단리종후는 절대이곳에 무사히 나타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어찌 마교에서 자신들의 소굴로 들어온 정파무림 맹주를 순순히 내보내 준단 말인가!
비록 아직까지 살아 있을 수는 있겠지만 마교 내에서 절대로 쉽게 빠져나올 수는 없을 거라고 그 역시 분명히 말한 바 있었다. 한데 그런 단리종후가 멀쩡한 모습으로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다.
왕야! 이분이 바로 정파무림의 맹주은 단리 노야이십니다. 사정이 있어 정식으로 소개를 못 드렸는데 제독태감이 저렇듯 억지를 부리니 어쩔 수 없이 이제라도 소개를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단리 모가 현영 왕야를 뵙소이다.
화천악의 소개에 가까이 다가선 단리종후가 죽립을 벗고 예를 취하자 , 그 모습이 무척이나 젊어 보인다는 것에 조금 놀라면서도 현영왕 역시 답례했다.
이제 보니 정파무림의 맹주셨구려, 무림인들이 많이 걱정하는 듯했느데 맹주의 무사함을 보면 그들도 기뻐할 것이오.
감사하오이다.
현영왕의 입장에서 보면 무례하다 여겨질 정도로 가벼운 존대였지만, 단리종후의 입장에서는 현영왕이라 해도 손자뻘도 안 되는 나이인데다가 그 역시 무림인이라 황실의 신분에 대해서는 크게 염두에 두어본 적이 없었기에 당연한 어투라 할 수 있었다.
또한 정파무림의 맹주엿던 위치가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었기에 아무림 황실의 친왕이라 하더라도 그 정도의 예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관부와 무림인들은 서로에 대한 인식과 신분체제가 확연히 다르기에 서로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고, 병사들은 따라나섰던 무림인들도 그러한 껄끄러움 때문에 줄곧 거리를 두고 병사들을 따라왔다. 그리고 지금도 무림은들은 군영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맨 후미 쪽에 자리 잡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전면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몇 사람 정도는 선두 쪽의 병사들과 합류해 있는 상태였다. 물론 그들은 무림맹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화천악이 나타나면서부터 줄곧 한족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얘기가 점점 심상치 않게 흐르자 신경을 곤두세운 채 듣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단리종후가 모습을 드러내자 크게 경악하고 말았다.
그리고 곧 그 중 한사람이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빠르게 무림인들이 모여 있는 후미 쪽으로 신형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맹주님!
사부님!
오! 정말 무사하셨군요.
잠시 후 상황을 접한 무림맹의 총관 손숙량을 비롯해 무림맹의 수뇌부들과 정파의 명숙들이 전면 쪽으로 나서며 단리종후를 보고 감격스런 외침을 발했다.
단리종후는 무림맹을 출발할 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기면서 약간 냉정한 기색으로 그들을 둘러보며 꾸짖듯이 말했다.
나도 자네들을 보니 반갑네만, 어째서 이곳까지 대책도 없이 몰려왔단 말인가!
단리종후의 질책에도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기쁜 표정들을 여실히 들러내면서, 그 중 손숙량이 대표 격으로 나서서 말했다.
맹주님, 풍검신이 마교의 인물이라는 것을 듣고 저희들은 정말 걱정했습니다. 마침 황실에서 병사들을 출정시켜 이곳으로 향한다기에 많은 군웅들이 의기를 품고 자발적으로 합류한 것입니다.
사부님, 저희도 돌아가는 와중에 다행히 고이륵 부근에서 병사들과 무림의 군웅들을 발견하고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도 소식을 접하고 무척이나 걱정했는데 이렇게 무사하시니 정말 대행입니다.
둘째 제자인 하후성도 나서며 감격을 표시했지만 단리종후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는 여전히 냉정한 기색으로 몰려든 군웅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천마신교로 갔던 일은 모두 잘 처리되었으니 자네들은 이곳에서 돌아갈 준비를 하게.
예? 이대로 그냥 돌아간단 말씀이십니까?
천마신교에서의 일이 잘 처리되었다는 표현도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냥 돌아간다는 말에 손숙량이 놀라서 반문했다.
그렇네.
그렇지만''''
손숙량이 무언가 걸리는 듯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단리종후가 다시 차가워 보이는 눈빛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왜? 그럼 안 될 이유라도 있는가?
무림맹을 떠날 때의 허허롭던 모습이 아닌 예전의 깐깐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단리종후의 태도에 손숙량은 약간 당혹스러움을 느꼈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익숙한 모습이기도 했기에 그는 곧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다만 마교를 눈앞에 두고 그냥 물러선다는 것이 왠지''''그리고 황군도 나섰으니 힘을 합해 마교를 공격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듯싶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맹주님께서 반대하신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천마신교가 가까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과 전정으로 자웅을 겨루자면 지금전력으로는 어림도 없네, 중원의 정사가 모두 힘을 합해 총력을 기울려도 대등한 전력이 될지 의문일세. 그러니 그대들도 허튼 색각 말고 이곳에서 모두 돌아갈 준비를 하도록 하게, 알겠는가?
그때 순찰당주인 모용휘가 나서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맹주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만,'''''
모용휘가 나서자 단리종후는 좀 더 차갑게 인상을 굳히며 말했다.
말해 보게.
함께 갔던 다른 분들은 모두 어찌 된 것입니까? 그리고 풍검신등은''''
모두 잘 있으니 걱정 말게.
예? 
모두 잘 있다고 했네.
그것이'''''
모두 잘 있다는 범위가 누구까지인지를 정확히 말해 주지 않았기에 모용휘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단리종후의 까다로운 옛 모습을 느끼면서도 그는 용기를 내어 다시 물었다.
풍검신과 동사왕은 어찌 되었습니까?
하지만 단리종후는 그에 대한 대답 없이 오히려 모용휘에게 냉엄한 태도를 보이며 물었다.
한데 자네는 왜 아직도 무림맹에 남아 있는 것인가?
단리종후의 엉뚱한 말에 모용휘는 흠칫 놀라며 떠듬거렸다.
예? 그게 무슨''''
이번에 큰 공을 세웠으니 자네도 황실로 돌아가 편안히 지낼때도 되지 않았나 해서 하는 말일세. 자네의 사부인 사공척도 황실의 어전 시위장으로 잘 있다 하니 이번에 돌아가면 무림맹에서 괜한 고생 하지 말고 한자리 달라고 청해 보게, 그동안의 공로가 있으니 황실에서도 섭섭하게 대하지는 않을 게 아닌가.
그 순간 모용휘는 안색이 크게 변해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더니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제독태감 조덕인을 바라보았다.
저런 등신 같은 놈''''
조덕인이 속으로 모용휘의 소심함에 욕설을 토해 낼 때 다시 누군가의 입에서 다급성이 터져 나왔다.
마, 마교다!
병사들의 수도 많긴 했지만 야공을 더욱 새까맣게 물들이며 달빛마저 가려질 정도로 어둠 속을 오르내리면서 나는 듯이 쏘아오는 수만에 달하는 인영들의 모습은 장관을 넘어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게다가 그들은 의도적으로 전신에서 마기를 한껏 발산시키며 접근해 오고 있었기에, 그들을 발견한 병사들과 군웅들은 천지간에 가득한 마기로 인해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였다.
저, 전투태세를 갖추어라!
히히히히힝!
두두두두두두!
당황한 누군가의 외침에 모두들 급히 말 위에 올라타자 군마들이 울부짖기 시작했고, 뒤쪽까지 상황을 전달하기 위한 전령들의 말발굽 소리가 진중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 병사들은 물론이고 무림 군웅들까지 안색이 변해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현영왕 또한 놀라서 화천악을 보며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이보게, 마교의 무리들이 먼저 공격을 해오는 모양일세, 어쩌면 좋겠는가?
이미 마교의 무력에 대해 화천악에게 들은 바가 있었고, 또한 실지로 수만에 달하는 인영들이 달빛을 가르며 쾌속하게 쏘아오는 모습을 보자 현영왕으로서는 전의보다는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화천악에게 기대어 묻게 된 것이다.
현영왕은 비록 소심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실지로 그들의 수와 기세를 접하자 지금의 전력으로는 도저히 당해 낼 수 없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수십만 병사들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는 수장으로서 그러한 불리한 상황을 느끼면서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비정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영왕은 그 순간 화천악의 말을 듣고 곧바로 회군하지 않은 것을 절실히 후회하고 있었다.
그러한 현영왕의 모습을 보면서 화천악은 침착한 태도로 말했다.
왕야!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들도 저희가 먼저 공격하지 않는 이상 황군을 상대로 섣불리 손을 쓰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병사들을 진정시키시고 진형을 갖춘 채 대기하라 명하십시오.
화천악의 차분한 모습에 현영왕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는 듯, 이내 긴장한 표정들을 짓고 있는 주위의 무장들을 향해 큰 소리로 명령했다.
모두들 섣불리 공격에 나서지 못하도록 하고, 진형을 갖춘 채 대기토록 하라.
현영왕의 명령에 다시 전령들이 말을 달리며 그것을 군사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모두 당황하지 말고 말에 올라 진형을 갖춘 채 대기하라! 반복한다! 명이 있기 전까지는 진형을 갖춘 채 대기하라!
전령들의 외침이 곳곳에 울려 퍼질 때 조덕인은 오히려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현영왕을 향해 말했다.
전하! 마교의 무리들은 모두가 포악한 자들이오니 저들은 분명 이대로 공격을 감행해 올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공격을 받으면 큰 피해를 입게 되오니 저희가 먼저 선공을 취해야 합니다.
무림인들은 집단전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20만에 달하는 기마병의 돌격이라면 저들도 쉽사리 대처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병사들이 나서게 되면 무림인들도 분명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말에 화천악의 싸늘한 음성이 이어졌다.
제독태감, 천마신교의 실체를 눈으로 직접 보고도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한단 말이오! 그리고 이제 본왕의 말이 사실임이 입증되었으니 당신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오.
하지만 조덕인은 화천악의 그러한 말에도 동요하지 않고 태연스레 말을 받았다.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라고 사료되옵니다. 일단은 적이 몰려오고 있으니 힘을 합쳐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흥! 그렇다면 당신이 먼저 동창의 고수들을 이끌고 나서보시오. 당신의 장렬한 희생을 보면 아마 병사들도 용기백배하여 당신의 뒤를 따를지 모르니 말이오.
그 말에 조덕인은 여인처럼 가는 눈썹을 치켜 올리더니 이내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
소신과 동창의 고수들은 이곳에서 현영왕 전하의 신변을 보호할 막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큰 싸움에서 지휘관의 신변을 지키는 것은 선봉에 나서서 싸우는 것보다 훨씬 막중한 일이오니 감정만으로 나설 수는 없는 일입니다.
조덕인은 어차피 마교의 고수들이 나타나 이상 목적을 이루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기에 여유로움을 가지고 응대했다. 애초의 계획대로 먼저 혼전이 벌어지면 좋겠지만 굳이 이쪽에서 싸우려 하지 않아도 최종적으로 그가 나선다면 목적한 바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교의 고수들이 멈췄다.
또다시 누군가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정말 그의 말대로 병사들이 있는 곳을 향해 쏘아오던 마교의 고수들이 진영과 백영 장 이상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서며 도열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장수들과 중원의 무림인들이 일단 가슴을 쓸어내리며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마교의 진영 쪽에서 다시 대략 이백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이쪽을 향해 다가서기 시작했다. 친우와 함께 있던 천마신교의 최고 수뇌부들이었다.
일단 그들이 무조건적인 공격은 해오지 않을 듯하자 현영왕도 내심 안도의 한숨을 불어내며 조금 더 앞으로 나섰다.
전하!
호위 무장들의 걱정스런 부름에 현영왕은 한 손을 들어 그들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다가서는 자들을 막지 말고, 너희들도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섣부른 행동을 일절 하지 않도록 하라.
현영왕의 명에 호위 무장들도 전면으로 나서지 않고 뒤쪽에 도열한 채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다가서는 자들을 맞이했다.
서로 간에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그들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가장 선두에 있던 백양신마가 걸음을 멈추고 군영 앞으로 나서 있는 현영왕을 향해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중원의 대군이 어찌 본교의 영역까지 오게 된 것인지 연유를 묻기 위해 나와 보았소이다.
현영왕은 말을 거는 상대방의 비록 외모 상으로는 젊어 보였지만, 무림에는 높은 경지의 무공을 익힌 자들이 반로환동하여 젊어 보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단리종후의 예도 보았기에 그 또한 결코 젊은이가 아닐 것이라 짐작했다.
더욱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백발과 풍기는 위엄이 범상치 않은지라 현영왕도 마주 예를 취하며 대답했다.
본인은 중원의 왕야인데, 이렇듯 귀교까지 병사들을 대동하고 오게 된 것은 황실에 물의를 일으킨 자가 귀교의 인물이라 들었기 때문이오. 하지만 귀교 전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없었고, 또한 그에 대한 문제는 이미 해결이 된 상태요. 때문에 우리는 이곳에서 회군하여 다시 중원으로 돌아갈 생각이오. 그에 대해 별다른 이견이 없다면 비록 밤길이라 하더라도 마다히지 않을 작정이오만'''
실제로 현영왕은 마교에서 막지만 않는다면 더 이상 이곳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밤길을 도와서라도 되돌아갈 작정이었다.
중원의 왕야셨군요. 아무튼 오셨던 일이 해결되어 지금이라도 돌아가시겠다면 본교에서도 굳이 돌아가시는 발걸음을 막을 이유는 없을 것 같소이다.
현영왕은 상대방이 너무 순순히 회군을 허락하자, 잠시 어리둥절한 심정이었으나 전혀 나쁠 것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내심 천만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정중한 어조로 사의를 표했다.
귀교에서 그렇게 이해해 주시니 중원의 왕야로서 감사드리오, 말씀드린 대로 더 이상 이곳에서 지체하지 않고 곧바라 돌아가도록 하겠소이다. 그런데''''
현영왕이 사의를 표명하며 잠시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자 백양신마는 곧 미소와 함께 말했다.
길을 막지 않겠다고 약속한 이상 허튼 행동은 보이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왕야께서 회군을 명하는 즉시 본인 또한 본교의 사람들을 물리도록 할 것이외다.
현영왕은 상대방이 자신의 의중을 읽고 호의를 보이자 완전히 안도하는 심정이 되어 다시 한 번 사의를 표했다.
귀교의 호희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오.
그럼 안녕히 돌아가도록 하십시오.
그 순간 조덕인은 현영왕의 조금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기가 막힌 표정과 함께 명청해지고 말았다.
백여 장 밖에서 마기를 풀풀 뿜어내며 도열해 있는 수만 고수들이 마교의 인물들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어째서 마교에서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자들을 순순히 되돌아가도록 뇌둔단 말인가? 상대가 황군이기 때문에?
물론 황군이라는 존재는 껄끄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껄끄러워한다면 어찌 이들이 마교라 불리겠는가? 그들은 말 그대로 마교도인 것이다.
한데도 어느 누구보다도 예의 바르게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자들을 손님맞이하듯이 배웅이나 하려고 나왔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가.
백번 양보해서 그들이 황군에게 껄끄러움을 느끼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눈에 정파 무림인들이 보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것도 일만이 넘는 무림인들이 있으니 말이다.
한데 그들을 이대로 돌려보내면 천년이나 비밀을 지켜왔던 지신들의 위치나 전력이 만찬하에 드러나게 될 텐데도 안녕히 돌아가시란다.
조덕인은 지금 이 모든 상황이 마치 한편의 연극처럼 느껴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실지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연극!
그렇다, 연극인 것이다.
그 순간 조덕인은 갑자기 뇌리를 훑고 지나가는 무언가를 느끼며 창백한 안색이 꺼멓게 죽어들기 시작했다.
주,죽지 않았어! 풍검신은''''
갑작스런 조덕인의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향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다시 뾰족한 음성으로 고함을 질러댔다.
모두가 연극이다! 이건 사기란 말이야! 풍검신은 결코 죽은 게 아냐. 그렇지? 말해 봐라, 애송이놈, 이 모두가 네놈과 풍검신이 꾸민 일이지?
조덕인의 발작과 같은 외침에 현영왕이 일순간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화천악은 오히려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조덕인을 비웃기 시작했다.
조 내시,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건가? 그리고 이를 어쩌나, 감히 황실의 왕야에게 애송이놈 어쩌고라니, 이는 황족 능멸죄에 해당하는데?
이'''이 죽일 놈! 감히 죽지도 않은 풍검신을 죽었다고 거짓 말을 하다니!
어허, 무엄한지고! 어디 증거를 대봐라, 조내시, 그렇지 못하면 조내시 네놈은 감히 황족 능멸죄뿐만 아니라 외부 세력과 결탁하여 무고한 병사들은 물론 현영왕 전하까지 희생시키려 한 반역과 역모죄까지 얹어서 당연히 즉결 참수형감이다. 어떤가, 조 내시, 이쯤에서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
그 순간 조덕인은 이성을 상실할 정도로 분노하여 한곳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다시 뾰족한 고함을 터트렸다.
무엇하는 것인가! 내가 이런 애송이에게 계속 이런 수모를 받는대도 아직도 나서지 않을 작정인가! 더 이상 숨길 필요도 없으니 어서 나서라, 그리고 모두 죽여버리란 말이다.


3장 대종사의 출현



후후! 정말 한심한 일이군, 안녕히 돌아가시라니'''언제부터 본교가 그렇게 예의를 갖추기 시작한 것인가?
나작한 웃음소리와 음성이었지만 그 음성은 초원 전체로 넓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악을 쓰던 제독태감에게서 그 음성의 주인에게로 향했고, 그 순간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상 대공자, 갑자기 그게 무슨 말''''
퍼석!
이게 무슨 짓'''커억!
휘류류류류!
크아아악!
맹, 맹주님의 대제자가 미쳤다.
갑자기 울려 퍼지는 비명성과 누군가의 외침에 사람들이 저마다 그의 주변에서 물러났다. 그러자 드러나는 참혹한 광경!
사람들은 그와 그의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주검들을 바라보며 저마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은 채 할 말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는 달리 한 사람의 머리를 수박처럼 터트려 버리고 또 한 사람의 목을 수도로 그대로 관통시킨 뒤 돌풍과도 같은 강기를 일으켜 순식간에 방원 삼 장여 내의 사람들을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어육으로 만들어 버린 단리종후의 대제자 한상은 질퍽한 육편과 핏물 속에서 태연히 걸어 나오며 피식 웃었다.
이거 뜻밖인걸? 당신은 어째서 놀라지 않는 것이오. 사부? 순식간에 벌어진 그러한 참혹한 광경에도 아무런 표정 변화없이 그런 한상을 주시하고 있던 단리종후는 그 물음에 나직하면서도 침착한 음성을 흘렸다.
그대가 내 제자가 아닌데 내가 놀랄 이유가 없지 않는가.
그 말에 한상은 우뚝 걸음을 멈추더니 의외라는 표정과 함께 말했다.
호오! 그럼 내가 당신의 제자가 아님을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단 말이오? 그럴 리가 없을 텐데'''아무튼 그것을 알고 있었다면 진정 놀라운 일이오. 혹시 내가 누구인지도 알고 있소?
천마신교의 대종사치고는 너무 유치한 장난이로군,
단리종후의 가라앉은 음성에 한상의 모습을 하고 있는 대종는 진정으로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더니 곧이어 다시 나직한 괴소를 흘렸다.
후후! 이거 아무래도 내가 그동안 귀하에 대해서 잘못 판단하고 있었던 모양이오. 얼마 전에 깨달음을 얻더니 정말 많이 발전했구려, 도대체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오?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닌 것 같은데''''그리고 그런 모습을 하고 있으면 손을 쓰기가 거북하니 이제 내 제자의 모습은 그만 돌려주는 게 어떻겠소,
그때 백양신마가 나서며 약간은 떨림이 있는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진정''''대종사이시오?
그러한 물음에 여전히 한상의 모습을 한 대종사의 시선이 백양신마에게로 향하며 가볍게 혀를 차기 시작했다.
쯧! 불과 1년도 함께하지 않은 무림맹주가 나를 알아보는데 백년 이상을 함께했던 자네가 나를 못 알아본단 말인가? 게다가 자네의 그러한 태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안녕히 가시라니''''자네가 그 말만 안 했어도 번거롭게 내가 이렇게 나서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 아닌가.
그 말과 함께 한상의 모습을 한 그의 얼굴에 잠시 검은 기운이 흐르는 듯하더니 어느새 단리종후의 대제자인 한상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평범해 보이는 인상의 30대 장한 한 명이 서 있었다.
다만 특이한 것은 그의 눈에는 흰자위가 없이 먹물을 뿌려놓은 듯 온통 검게 물들어 있어 평범한 인상과는 달리 무척이나 섬뜩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대,대종사를 뵈오이다.
대종사를 뵙습니다!
한상의 모습이 사라지고 평범해 보이는 인상의 장한이 나타나자 백양신마는 급히 예를 올렸고, 그 뒤편에 서 있던 이백여명의 천마신교 수뇌들 역시 허리를 굽히며 일제히 예를 올렸다.
그리고 백여 장 밖에 도열해 있던 천마신교의 오만여 고수들도 모두 서둘러 오체투지의 자세를 취하며 예를 올렸기에 그 모습이 마치 검은 파도가 밀려가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참! 그러고 보니 나도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본교로 갔던 풍검신이란 아해는 어찌 되었는가? 묵월이 그런 엉뚱한 행동을 한 것은 그가 천마곤패를 지니고 있기 때문임은 알겠는데''''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네, 물론 지금 상황을 보니 대충 짐작이 가긴 하네만''''
대종사는 평소에도 본좌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 듯 백양신마에게 질문을 하면서도 나라는 호칭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는 본교의 곤패주가 되었습니다.
그 말에 대종사의 검은 두 눈에서 잠시 이채가 발했다.
그렇군, 그럼 소여천, 그 녀석은 죽은 것인가?
그렇습니다.
흠'''확실히 예상 밖이야, 그가 강한 것은 알았지만 그 짧은 기간에 소여천 그 녀석을 처리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말일세. 아니, 오히려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 있기만 해도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했지,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자리에 묵월과 함께 본교로 향했던 사람들 중 단 두 사람만이 보이질 않는구먼,
그 말과 함께 대종사의 흑안이 냉무심과 한노사로 변장해 있는 천우와 동사왕에게로 향하자 한 노사의 모습을 한 동사왕이 코웃음을 발하며 나섰다.
흥! 그런 것도 못 알아차린다면 마교의 두목 노릇을 할 자격이 없는 거지, 한데 마교의 두목쯤 되는 작자가 어째 하는 짓이 그 모양인 거지? 치사하게 남의 제자로 변장하고 있지를 않나, 황실의 내시 놈과 음모나 꾸미질 않나, 그리고 누가 마교 두목아니랄까 봐 등장하면서 꼭 그렇게 피를 봐야만 하는 거냐? 그런 거 안 해동 마교 두목쯤 되면 웬만한 녀석들은 다 겁을 먹는 다고.
한 노사의 얼굴을 한 동사왕에게서 사정없이 독설이 터져 나오자 대종사는 대소를 터트렸다.
크하하! 여전히 그 독설은 매섭기 짝이 없군, 사실 동사왕 자네는 무공보다는 그 독설이 더 무섭다네, 하지만 네게도 피치못할 사정은 있었다네, 아! 그리고 방금 전 피를 본 것은 가볍게 분풀이를 한 것이니 너무 뭐라 하지는 말게, 나름대로는 굉장히 공을 들인 일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드러나 버렸으니 어찌 화가 나지 않았겠는가. 대종사가 여유로운 태도로 말을 받자 동사왕은 다시 비웃듯이 말했다.
이봐, 지금 와서 호탕한 척해 봐야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니까 애쓸 필요 없다고, 그리고 단리 늙은이에게 양보는 했지만, 나도 기다리는 것은 질색이란 말씀이야, 그러니 기다리는 사람 생각해서 그만 뜸들이고 어서 시작하는 게 어때?
동사왕의 말은 빨리 단리종후를 처리하고 자신과 한판 붙자는 내용이었기에 주변에서 어느 정도 정신을 수습하기 시작한 정파 군웅들이 분노의 기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후후! 풍검신 저 아이는 몰라도 사실 자네들은 내 상대가 아니라서 별로 상대하고픈 생각이 없다네, 하지만 무림맹주에게는 지은 죄가 있으니 상대해 주어야겠지, 사실 죄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 그러한 내막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을 것 같고''''아무튼 나는 항시 준비가 되어 있으니 아무 때고 오시게나,
대종사의 그러한 말에 한 겹 얼음을 씌운 듯한 표정으로 서있던 단리종후가 서서히 기세를 일으키기 시작했지만 대종사는 여전히 태연스런 표정으로 뒷짐까지 지어 보이는 여유를 보였다.
단리종후는 무림맹을 출발하기 직전 무극검법의 궁극의 초식이라는 무극 일원결을  깨우쳐 무극검도의 완성을 이루었다.
무극일원결은 세상과 만물의 이치를 흐르는 원리로써 자신의 뜻이 머무는 곳에 검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심검도라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뜻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상하게 하거나 죽일 수도 있다는 의발상인 심즉살의 경지를 이루었다.
하지만 대종사를 상대로는 쉽게 뜻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대종사 역시 이미 오래 전에 진정한 마를 깨달은 자였고, 그것은 만류귀종의 원리로써 깨달은 바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이었기에 그 스스로가 단리종후의 뜻이 머무는 곳을 느낄 수 있었고, 또한 스스로가 그에 동화되어 단리종후의 뜻이 머무는 곳을 역시 심기로 모두 차단하고 있었기에 단리종후로서는 선뜻 공세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동사왕은 단리종후가 기세만 일으킨 채 대종사를 노려보고만 있자 답답하다는 어투로 천우를 향해 말했다.
단리 늙은이도 옛날에는 꽤나 성깔이 있었는데 어째 요즘은 죽는 날만 기다리는 맥 빠진 늙은이가 따로 없단 말일세. 벌써 대종사란 자에게 주눅이 들어 겁을 먹고 있는 것 같으니 저 상태로 과연 검이나 제대로 휘두를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
그 말에 천우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너무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단리 맹주 역시 이미 육신의 경게를 넘어가 보았기에 대종사에게 전혀 뒤질 바가 없습니다. 다만 너무 대종사를 의식하고 있기에 아직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어차피 단리 맹주에게 섣불리 공세를 취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천우의 말에 동사왕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야? 그럼 저 대종사라는 작자가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말이잖나? 처음부터 알아봤지만 허풍도 심한 게 저 작자, 마교 대종사라기보다는 꼭 어디 뒷골목의 삼류 건달패 두목 같단 말일세, 혹시 저 작자도 가짜 아닐까?
동사왕의 그러한 말에 천우가 냉무심 얼굴에 희미한 실선을 그으며 미소 짓자, 그 순간 동사왕은 문득 무언가를 느낀 듯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다시 천우에게 질문을 하였다.
가만''''단리 늙은이가 육신의 경계를 넘어가 보았다고? 그럼 혹시 얼마 전에 그 물아일체를 느꼈던 시점을 말하는 것인가?
그 물음에 천우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순간 동사왕은 가일층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그 말은 ''''설마 단리 늙은이가 생사경의 경지마저 뛰어넘었다는 말은 아니겠지?
그러한 경지를 완전히 뛰어넘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벽을 넘어선 이후 단리 맹주는 육신의 경계를 벗어나 보아기에 다음 관문에 한 발짝 들여놓고 있는 상태라고 할수 있겠지요.
그 순간, 동사왕의 두 눈에서 갑자기 질투의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아무튼 단리 늙은이가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 아닌가? 그럼 이 우형보다 단리 늙은이가 한 수 위의 경지라는''''
뭐가 그렇게 분한지 동사왕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씨근대며 하는 말에 천우는 다시 실선과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아직은 형님과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동사왕은 찡그려진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그것이 왜 큰 차이가 아니란 말인가, 그러한 차이가 바로 생사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일세.
그러자 천우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결정적인 요인이 될 정도로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형님과 단리 맹주님의 차이 정도로는 역시 서로가 상대방이 지닌 기운의 허점을 정확히 알아내기란 어렵습니다. 그것은 대종사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결국 그러한 상태에서는 서로 간에 지닌 무공의 장단점과 익히고 있는 무공의 위력, 그리고 신체 조건이나 심리적인 요인 등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서 승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사왕은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천우에게 말했다.
서로 깨달음의 경지가 비슷할 경우야 당연히 그러한 것이 더 중요한 요인이 되긴 하겠지만'''그럼 정말로 단리 늙은이와 이 우형과는 별 차이가 없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천우의 대답에 동사왕은 찡그렸던 인상을 어느 정도 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데 단리 늙은이는 왜 저렇게 잔뜩 얼어붙어 있는 거지? 서로 별 차이도 없다는데 냉큼 결말을 보지 않고서'''''
또다시 태평스러워진 동사왕의 중얼거림에 천우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상대방의 허를 느낄 수 없는데 너무 자신의 깨달음에만 의지하다 보면 그것은 오히려 과중한 심력을 낭비하는 결과만 가져오게 될 뿐입니다.
단리 맹주와 같은 경지에서는 초식이란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자신이 한평생 고련하여 익힌 초식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게 자신의 뜻과 의지를 반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초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겠지만 단리 맹주와 같은 경지에서는 초식 그 자체가 이미 초식이란 의미를 벗어난 것이 될 것입니다.
천우의 말은 비록 크지 않았지만 중인들뿐만 아니라 서로 대치하고  있는 대종사나 단리종후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말은 단리종후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기에 충분 했다.
단리종후는 즉시 답답할 정도로 느릿하게 자신의 무극검을 뽑아 들며 대종사를 향해 무극검법의 기수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종사 역시 눈살을 찌푸리며 천우를 힐끗 응시한 뒤 무표정한 기색으로 다시 단리종후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단리종후는 더 이상 대종사를 의식하지 않고 천우의 말대로 자신이 한평생 익히고 고련해온 무극검법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무극일원결은 일정한 초식이라기 보다는 검으로써 만류귀종의 이치를 깨우치게 하는 도 라 할 수 있었다. 단리종후는 대종사를 상대로 그러한 무극일원결에 집착하느라 오히려 검을 전개해 낼 수 없었고, 그것은 오히려 스스로의 의지를 얽매이게 하는 일이었다.
물론 상대가 대종사 정도의 인물이 아니었다면 단리종후 역시 그러한 집착에 빠져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깨우침을 얻은 후 진정으로 강한 상대와 생사를 겨루어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은연중에 제자의 일에 대한 분노로 인해 완전한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기에 그 스스로가 미몽 속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천우의 말을 통해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대종사마저 의식하지 않게 되자 진정으로 마음과 의식이 열리며 뜻이 일기 시작했다.
단리종후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무극검법의 초식들을 거부하지 않은 채 곧이어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무극검법의 제1초인 무극섬을 전개해 내었다.
번쩍!
그 순간 단리종후의 손에 들려 있던 무극검이 한 줄기 잔상만을 남긴 채 갑자기 사라진 듯 보였다.
그렇게 단리종후의 무극검이 빛 그 자체가 되어 공간을 찔러들 때, 대종사 역시 무표정한 기색으로 어느새 두 손을 떨쳐내었다.
고오오오오!
쿠앙!
그러자 대종사의 손짓에 따라서 갑자기 달빛마저 가릴 듯한 검은 기운이 천지사방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고, 한순간 어둠 속에서 푸른 기운이 번뜩이는 듯 보이며 천지번복의 굉음과 함께 미친 듯한 경기의 여파가 사방으로 폭풍처럼 휘몰라치기 시작했다.
그러한 경기의 여파에 의해 주변의 땅이 온통 뒤집히며 흙먼지들이 뭉게구름처럼 하늘로 치솟아 올랐고, 화천악이 이미 수십 장씩 물러서게 했던 앞쪽의 병사들과 말들도  그 여파에 휩쓸려 다시 수장씩 날아가 내동댕이쳐졌다.
하지만 제독태감을 보호하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대종사와 단리종후의 모습을 주시하고 있던 동창의 고수들 태반은 그 경기의 여파에 휩쓸려 육신이 산산이 부서진 채 피 먼지로 화해 날아올랐다.
장내에는 폭음에 놀란 말들의 울부짖음이 요란스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대종사의 검은 기운과 단리종후의 새파란 검기가 연신 어우러지며 굉굉한 폭음과 미친 듯한 경기의 여파를 방생시키는 통에 반경 백여 장 이내는 마치 아비규환의 혼돈 속에 빠져버린 듯했다.
현영왕 역시 화천악의 권유로 병사들을 조금 물러서게 하였지만 자신은 호위 무장들과 함께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 눈앞에 벌어진 기경할 광경에 넋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현영왕과 그 주변의 인물들은 천우가 은연중에 보호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피해가 없었지만 그들도 이윽고 혼비백산하여 곧바로 말을 달려 격돌하는 곳에서 멀찍이 도망쳐 나왔다.
천우와 동사왕, 그리고 천마신교의 소뇌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화천악은 현영왕을 보호하기 위해 같이 물러섰고, 제독태감과 살아남은 동창의 고수들도 현영왕과는 거리를 두고 다른 쪽으로 물러서서 얼굴에 경악을 드리운 채 그러한 격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먼지 구름 속에서 동사왕의 불만 가득한 투덜거림이 이어지고 있었다.
콜록콜록! 생사경씩이나 되는 작자들이 꼭 이렇게 먼지를 피우면서 싸워야 하는 거야?
동창의 고수들이라고 모두가 무림인들을 잘 아는 것은 아니었다. 무림에서 신분을 감추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몇몇을 제외한다면 그들이 접하는 무림인들이란 기껏해야 고관들이 거두어들인 호위 무사들이 전부랄 수 있었고, 그들 대부분은 강호상의 이삼류 수준의 무인에 불과했다.
물론 간혹 그 중에 일류고수라 할 수 있는 자도 끼어 있긴 했지만 절정고수라 할 수 있는 자들은 접해 볼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고, 가끔 부딪치게 되는 일류고수라는 자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기에 숫자만 받쳐준다면 무림의 절정고수라 해도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항상 한계를 넘나드는 혹독한 수련과 무수한 살행으로 단련된 그들의 실전 감각은 무림의 웬만한 일류고수들이라 해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고, 동창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제아무리 무림의 고수들이라 해도 어느 정도는 위축이 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표적이 된 자들은 제대로 실력 발휘도 못 해보고 죽거나 제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그들은 무림인이라고 해도 크게 대단하다고 여기지 않고 있었고, 강호상에 떠도는 화경급 고수들의 대결 장면 같은 것은 전부 허풍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 이미 멀찍이 물러서 있던 무림은들과 달리 그들은 태연히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던 것이고, 내공으로 치자면 태반이 강호상의 이류고수급 정도밖에 되지 않는 그들이었기에 막대한 피해를 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동창의 고수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건 말건 그런 것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 제독태감 조덕인은 경기의 여파가 미치지 않는 곳까지 빠져나와 전혀 엉뚱한 충격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어찌 저럴 수가! 나,나는 생사경의 경지가 아니었던 것인가?
동사왕이나 화천악 등이 들었다면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었지만, 조덕인은 그 스스로를 생사경의 경지로 착각하고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 단리종후와 대종사의 격돌을 지켜보며 커다란 충격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지를 생사경이라고 착각하고 있었기에 마교 대종사와도 손을 잡고 이곳에 온 것이었다. 설사 일이 잘못된다 하더라도 자신의 한 몸은 충분히 건사할 자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한데 그는 대종사와 단리종후의 격전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의 창백한 얼굴은 불안감으로 인해 서서히 회백색으로 질려가고 있었다.
조덕인이 그러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에는 나름대로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사실 어떤 경지라는 것을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어떤 현상들로 인해 구분 짓는 경우가 많았고, 그러한 통설로 따지자면 남들이 보기에 조덕인은 생사경의 경지라 해도 큰 무리가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는 6갑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내공을 지니고 있었고, 환골탈태와 반로환동을 이루었으며, 거기에 더해 금강불괴라 해도 좋을 정도의 단단한 신체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것들이 조덕인의 순순한 깨달음으로 인해 생겨난 것들이 아니라 특별한 심법과 기연으로 얻게 된 영약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라는 점이었다.
따라서 육신이 그 정도의 상태라면 대부분은 의식이 함께 열려 깨달음을 얻는 것이 통상적이겠지만 조덕인은 그에 따른 의식의 각성이 전혀 없었고, 또한 그럴 여건도 아니었던 것이다.
조덕인은 당금의 황제가 즉위한 후에 견마지로를 아끼지 않았던 공로로 동창의 수반이 된 직후 성연귀비의 허락을 얻어 황실의 무고를 둘러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옥로반양진경이란 도가심법서를 찾게 되었다.
그것은 황싱의 회춘보양법으로 전해 내려오는 옥로진결의 실전된  진본이었던 것이다.
옥로반양진경은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 하나였던 음양가에서 파생된 심법으로, 음양의 도를 추구하여 장생불사와 선인에 이르는 방법으로 추구하던 순순한 음양기에 반발한 이단의 무리들의 의해 창안된 역천의 심법이었다.
비록 그 효능 면에서는 무궁무진하다고 알려진 심법이기는 했지만, 익히는 방법이 괴이음독하고 반인륜적인 부분이 많기에 황가로 흘러 들어간 후 사장되어 버렸다. 그 중 회춘보양법에 대한 일부만이 남아서 옥로진결이라는 명칭으로 황가에 전해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옥로진결 역시도 상당히 퇴폐적인 부분이 많았고, 또한 황실 내에서도 비공식적으로나마 금서로 지목되어 있긴 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말년에 들어선 역대 황제들이나 황족들이 옥로진결을 찾아 그곳에 기술된 온갖 퇴폐적인 행위를 즐기며 그 가치를 인정해 왔던 것이다.
아무튼 조덕인 옥로반양진경이야말로 자신과 같은 사람이 익히기에는 최상의 무공임을 알아보고는 뛸 듯이 기뻐하며 그것을 은밀히 익히기 시작했고, 대성한다면 능히 불로불사지체를 이루게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옥로반양진겨을 수련하기 위해서는 늘 동남동녀의 원기가 필요했고, 때문에 성연귀비가 있던 시절에는 눈치를 보느라 크게 진정을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대성하기만 한다면 성연귀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심에 조심을 기하면서 꾸준히 수련해 오던 중 어느 날 성연귀비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조사해 본 결과 그녀가 풍검신과 동사왕이란 무림인에 의해 죽었음을 확인하게 되자 더 이상 거리낄 바가 없어찐 그는 그동안 은밀히 익히던 옥로반양진경의 완성을 위해 서습없이 동남동녀들을 납치하여 그들의 원기를 흡취하며 옥로반양진경의 완성에 매달렸다.
하지만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9성의 단계에 이르자 더 이상 발전이 없었고, 그때부터는 하루에도 십여 명씩의 동남동녀를 희생시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어느 순간부터는 황궁의 비고까지 뒤져가며 도움이 될 영약들을 찾기에 이르렸다.
그러다가 또다시 천운이 닿았음인지 황실 비고에서 깊숙이 잠자고 있던 전설상의 음양독각사의 뿔이 들어 있는 목함을 찾게 된 것이다.
음양독각사의 뿔이야말로 만년화리의 내단이나 만년삼왕에 비견될 만한 천고의 영약이었지만, 그 가치를 모르는 역대의 누군가가 단순히 불길한 물건으로 치부하고 구석에 처박아 둔 것임이 분명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음양독각사의 뿔은 천지간의 음기와 양기가 모여 고형된 기물로 인반인이 함부로 만진다면 오히려 몸속의 원기를 발려 그것만으로도 크게 몸을 상하거나 심지어 즉사 할 수도 있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예전에 누군가가 황제에게 진상한 것이라면, 그자는 오히려 황제 시해의 누명을 쓰고 참살당했을 가능성도 높았다.
아무튼 효용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더없이 위험한 물건이었지만, 옥로반양진경에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영약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되어 있었고, 그 중 음양독각사의 뿔이야말로 최고의 영약으로 기술되어 있었기에 조덕인은 그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조덕인은 더 이상 동남동녀들의 원정을 흡취하지 않고서도 단시일 내에 음양독각사의 뿔을 이용하여 옥로반양진경을 10성 대성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대성을 이룬 순간, 조덕인은 강제적인 환골탈태를 경험할 수가 있었다.
물론 그의 몸은 더욱 여성스러워졌지만 그런 것은 조덕인에게 있어서는 전혀 신경 쓸 가치가 없는 일이었다.
전신에서 끊임없이 흘러넘치는 엄청난 양의 진기와 잔주름 하나 없이 말끔해진 피부, 그리고 도검도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는 금강불괴의 신체를 얻게 되자 조덕인은 스스로가 무공을 익힌 무인들의 최고 경지라는 불노불사의 경지, 즉 생사경에 들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또한 그것을 실제로 확인해 보기 위해 무림인들이 말하는 화경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는 어전의 수석 시위장 사공척과도 비무를 해보았는데. 그 결과 강호상의 초절정 고수의 반열에 올라있다는 그조차 자신의 7성 공역이 담긴 일장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더불어 사공척으로부터 무림의 맹주조차 그의 일장을 무사히 받아내기는 힘들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애초에 화경의 경지조차 느껴보지 못한 조덕인이었기에 현경이니 생사경이니 하는 것에 대한 감도 없었다. 결국 화경에 이른 고수가 자신의 7성 공력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조덕인은 자신의 실력에 대해서 맹신하게 되었고, 무공의 경지 자체를 우습게 여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내공을 겨루는 일장이었기에 사공척이 그의 막강한 내공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밀린 것이었을 뿐, 실질적인 생사결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내공 면에서는 확실히 무림맹주인 단리종후조차 능가할 것이라는 의미로 한 사공척의 말을 그는 실력의 차이로 받아 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옥로반양진경을 익히면서도 무리 같은 것을 고민해 보거나 따져본 적도 없었고, 10성 대성하기 전까지 남과 제대로 된 비무도 해본 적이 없었으며, 힘들게 검술이나 장법같은 초식을 수련해 본 적도 없었다. 오로지 옥로반양진경에 따라 동남동녀들에게서 그들의 원기를 뽑아내고 그것을 흡취하는 일만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옥로반양진경을 대성하게 되자 그의 주위에는 그의 내공을 능가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주위에 금강불괴를 이룬 자도 없었다.
화경을 이룬 고수조차도 그의 일장을 받아내지 못하고 패배를 자인했고, 동창의 무공 교위들이 아무리 공격을 퍼부어도 옥로반양진경을 일으켜 몸에 두르고 있으면 절대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가벼운 일수에 모두 가랑잎처럼 날아가 버렸다.
누구도 자신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고, 자신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죽일 수 있으니 그야말로 무적이 된 것이다. 결국 그 스스로는 무인의 최고의 경지인 생사경에 이른 것이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었고, 그 주변에는 그것이 아니라고 진실을 말해 줄 사람도 없었다.
그는 황실의 고관이지 생사의 싸움터를 누비는 무인이 아니었기에 그러한 성취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없었고, 사공척조차도 조덕인의 경지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필요성은 없었던 것이다. 다만 어느 날 갑지기 무지막지하게 강해진 그를 인정해 주면 그뿐이었던 것이다.
조덕인이 그러한 충격으로 멍해져 있을 때, 무시무시한 격돌의 중심지에서 허겁지겁 빠져나온 현영왕과 호위 무장들 또한 낯빛을 온통 경악으로 물들인 채 격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현영왕의 눈에 멀찍이 떨어져서 멍하니 서 있는 조덕인과 불과 백여 명도 채 안 되는 동창의 무리들이 눈에 띄었다.
그 순간 현영왕은 얼굴에 분노한 기색을 가득 띠며 곁에 있는 화천악을 향해 말했다.
정녕 이번 일이 제독태감과 마교의 대종사라는 자가 짜고서 벌인 일이란 말인가?
현영왕의 물음에 화천악은 잠시 대종사와 단리종후가 싸우고 있는 격전지에서 시선을 거두고는 그 역시 넋이 빠져 있는 듯한 제독태감을 응시한 채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제독태감은 애초부터 왕야를 노린 것입니다. 그리고 병사들은 대종사로 하여금 처리하도록 계획을 꾸민 것입니다. 그는 천마신교가 이미 풍검신의 손에 의해 제압되었다는 것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기에 그러한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음! 감히 그런 대역무도한 짓을 꾸미다니'''
그 말에 현영왕은 분노한 기색으로 침음성을 발하다가 다시 노기 어린 어조로 말했다.
지금 당장 병사들로 하여금 저 역신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잡아들이도록 하겠네.
하지만 화천악은 현영왕을 만류하였다.
왕야, 지금은 병사들을 움직이실 때가 아닙니다. 어차피 저들은 풍검신이 있는 한 이곳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말에 현영왕도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여전히 노기 어린 기색으로 화천악을 바라보며 불쾌함이 서린 어조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자네도 나를 속였구먼, 자네가 일행이라고 했던 그 냉혹하게 생긴 젊은이가 바로 역도인 풍검신이 아닌가.
그 말에 화천악은 깊숙이 고개를 숙여 보이며 사죄했다.
왕야,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독태감의 음모를 밝히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보시는 바와 같이 단리맹주와 대종사 두 사람만의 격돌로도 저러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풍검신은'''저 두 사람은 물론,이곳에 있는 모든 고수들이 덤벼들어도 어쩌지 못할 사람입니다. 더구나 이미 천마신교 전체가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상태입니다. 그런 풍검신을 어찌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더 이상 황제폐하와 부딪치길 원치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저와 현영왕 전하께서 황제폐하를 설득시켜 주길 원하고 있습니다.
화천악이 그제야 본심을 밝히자 현영왕은 굵은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지금 싸우고 있는 저들의 위세를 보니 무림의 고수들이 진정 얼마나 무서운 자들인지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네, 하지만 지엄한 황제폐하의 명을 받고 출정한 이상 어찌 이대로 모르는 척하고 회군할 수 있겠는가.
개인적으로는 그가 행한 일이 오히려 황실을 위해서 득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네, 그러나 황제폐하께서 성연귀비를 생각했던 마음이 각별했으니 그 분노가 어찌 쉽게 가라앉겠는가, 그러니 이대로 회군한다 해도 분명 황제폐하의 진노가 대단할 것이고, 오히려 황제폐하의 분노를 부추겨 더욱 많은 군사들이 출정하게 될 것일세. 게다가 제독태감의 일도 믿으려 하지 않으실 것이고''''
현영왕도 무림고수들이 얼마나 강하고 위험한 자들인지 익히 들어왔지만 두 사람의 격전을 보고 나니 정말로 그들이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확실히 저들만 해도 수십만의 병사들을 동원한다 해도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그들보다 훨씬 강하다는 풍검신을 상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황제의 명을 받고 출정한 이상 풍검신이 목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척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화천악이 더욱 표정을 굳히며 간절함이 느껴지는 어조로 말했다.
왕야, 진정으로 황실을 위하고 황제폐하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말씀까지는 드리지 않으려 했습니다만, 풍검신은 결코 황제폐하와 백만대군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정말로 황실 전체가 존폐의 기로에 설 수도 있습니다. 황실 전체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다 함은 결국 국가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나온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외세에 의해 진정 황실과 국가가 위험하다 느껴진다면 아무리 적이라 해도 싸우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화친정책을 펼친 예가 적지 않습니다. 상대가 비록 국가는 아니지만 오히려 주변의 변방국들보다 더욱 강한 세력과 힘을 가진 자인온데 어찌 무리하게 그와 대적하려 하십니까. 더군다나 그 스스로 더 이상 부딪치길 원치 않고 있는데 그런 그를 굳이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왕야께서는 이 일을 단순한 역도의 무리들을 처리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를 상대하는 일은 황실 전체의 명운을 걸어야 할 일인 것입니다.
그 말에 현영왕은 낯빛도 석고상처럼 굳어지며 목소리에 냉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무리 자네라도 용납하기 힘든 말일세.
하지만 화천악은 현영왕의 분노를 무시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왕야께서는 풍검신은 고사하고, 그의 의형인 동사왕이 황실로 쳐들어와 황제폐하를 시해하려 한다면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황제폐하뿐만이 아닙니다. 황족 전체를 그렇게 해하려 한다 해도 막을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그 순간 현영왕은 노기를 발하다가 너무 놀라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두 눈을 크게 뜨며 떠듬거리기 시작했다.
어,어찌 그런 터무니 없는 말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십니까? 물론 아무리 국법과 황실을 안중에 두지 않는 무림인들이라 해도 함부로 그런 생각을 갖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는 그는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황실과 황제폐하는 아무런 의미도, 그리고 상관도 없는 사람일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황제폐하보다는 그의 명을 더 따를 것입니다.
역대의 수많은 황조들이 흥하고 망한 것이 모두 외세의 침입때문만은 아닙니다. 만약 황실의 존재 자체가 소멸된다면 그는 얼마든지 새로운 황제를 세울 수도 잇고, 그 자신이 황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그에게는 더욱 손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에게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를 단순히 역도로 몰아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실 생각이십니까?
화천악의 말은 현영왕에게 있어 진정으로 그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 순간 현영왕은 장내의 굉굉한 폭음도 들리지 않았고 수만 관의 화약이 연신 터져 오르는 듯한 험악한 광경들도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마치 백짓장처럼 텅 비어버리는 듯했고 전신은 학질에라도 걸린 양 사정없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노 때문이 아니라 정말 화천악의 말대로 될 수 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느꼈기에 몰려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왕조도 초대의 태상황이 기존의 왕조를 힘으로 제압하고  모든 왕족들을 말살한 후에 세운 나라였다. 그런데 상대가 그러한 힘을 갖추고 있는 자라면 그 역시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나라와 나라 간의 싸움보다 더욱 위험한 것이고, 진정그럴 작정을 한다면 손을 쓸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된 것이다.
세상의 이치란 결국 최우의 승자에게 명분이 서게 되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정말로 그러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아무리 그러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아무리 그러한 행위를 성토한다 한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인 것이고, 세상이 바뀐다면 그것이 곧 정의가 되는 것이다.
현영왕은 어느새 자신의 장포가 식은땀으로 인해 물에라도 빠진 듯이 축축이 젖어 있다는 것을 느끼며 더욱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얼굴색 또한 이마 제독태감보다도 더욱 창백하게 질린 채 더 이상 화천악에게 화를 낼 기운도 그리고 의미도 찾지 못했다.
그는 그렇게 또다시 멍한 시선으로 화천악을 응시하다가 겨우 말을 꺼내었다.
진정''''그는 황제폐하와 더 이상 부딪치길 원치 않는다고 하였는가?
화천악 역시 묵묵히 현영왕의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간신히 꺼내는 그 말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제독태감의 음모를 밝힌 것이고, 또한 현영 왕야와 이곳에 온 병사들을 무사히 돌려보내려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곳에 온 병사들은 벌써 모두 희생되었을 것입니다.
현영왕은 다시 침묵하다가 힘겨운 어조로 말했다.
이곳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바로 회군하도록 하세나, 그리고'''목숨을 걸고서라도 황제폐하를 설득시켜 보도록 할 것일세.
그 말에 화천악도 안색을 굳히며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옳은 결정이십니다. 그리고'''저 또한 현영 왕야와 함께 목숨을 걸도록 하겠습니다.
화천악의 그러한 말에 그나마 위안이 된다는 듯이 현영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맙네'''그래 준다면 정말 큰 힘이 될 것이네.
어느덧 현영왕과 화천악이 대화를 나누던 순간에 연신 장내를 울리던 폭음과 광풍이 거짓말처럼 멈추어 있었고, 그에 따라 장내를 자욱이 뒤덮고 있던 먼지 구름도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현영왕과 화천악도 문득 그것을 느꼈기에 대종사와 단리종후가 격전을 치르던 곳을 주시했다.
이윽고 먼지가 거의 가라앉자 여전히 서로 마주 보고 대치해 있는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현영왕은 화천악은 화천악의 긴장된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아마도''''이번이 최후의 격돌이 되겠군요.
먼지가 모두 가라앉고 나자 사람들도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대종사와 단리종후의 주위 백여 장 이내가 황폐해진 채 움푹 파여 있는 것을 보고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둘의 신색은 그러한 엄청난 결돌이 있었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 처음과 별로 달라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종사는 여전히 검게 물든 흑안으로 두 손을 내린 채 단리종후를 바라보고 있었고, 단리종후는 중단세의 기수식이 아닌 검을 축 늘어뜨린 듯한 하단체를 취하고 있다는 것만이 처음과 달라진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데 바로 그 순간, 대종사에게서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심상치 않은 변화가 서서히 일기 시작했다. 언뜻 순박해 보이던 그의 얼굴에 어디서 생겨난 것인지 모를 아수라의 형상을 지닌 검은 기운이 겹쳐지는 듯하더니 그의 얼굴 자체가 그러한 아수라의 형상을 따라 변해 갔고, 그의 전신에서는 지옥의 암연과도 같은 흑무가 뭉클거리며 피어올랐던 것이다.
곧이어 대종사의 그러한 뭉클거리는 검은 기운은 대종사의 신형 자체를 감추어 버렸고, 삽시간에 일정한 형태를 이루며 변해 가기 시작했다.
그 흑무는 잠시 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변하여 암석처럼 굳어졌는데, 그것은 영락없는 거대한 아수라의 형상이었다. 그리고 안력이 좋은 사람들은 그 검은 기운으로 이루어진 아수라상의 표면이 마치 비늘과도 같은 문양을 이루고 있음도 알아볼 수 있었다.
대종사 대신 거의 이 장여에 이르는 거대한 아수라 형상이 달빛 아래 그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또다시 놀람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자리를 지키고 있던 천마신교의 사람들 측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저, 저것은'''
이럴 수가! 저것은 틀림없이 천마 조사의 오대마학 중 최강의 지존마학이라는 아수라지존공이 틀림없다. 어찌 대종사가 실정된 오대마학 중 하나를''''
그러한 외침에 천우도 두 눈에 이채를 담고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역시 그렇군,
동사왕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그러한 아수라 형상을 쳐다보고 있다가 천우의 나직한 음성에 궁금증을 드러내었다.
뭐가 그렇다는 말인가?
예상대로 대종사가 펼친 저 기운은 일전에 기환노조라는 자가 펼쳤던 지옥혈마벽이란 수법처럼 원령들을 금제하고 가둘 수 있는 수법입니다.
그 말에 동사왕은 새삼 크게 분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결국 저 마교 대종사라는 놈은 자신의 무공을 높이기 위해서 황실의 내시 놈과 손을 잡고 20만이나 되는 병사들을 희생시키려 한 것이었군,
그러자 천우는 무표정한 기색으로 대종사를 주시하면서 조금은 굳어진 어조로 말했다.
그렇기도 하겠지만  말씀드렸던 대로 단순히 무공을 높이기 위한 방편만은 아닐 것입니다. 북천검왕이라는 자는 나중에 자신이 금제하여 가두어두었던 원령에게 자신의 몸을 제물로 주었지만, 그 수법은 무공을 높이기 위한 방법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또한 대종사나 천마의 흔적을 얻은 그들이 공통적으로 수많은 원령들을 금제하거나 흡수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는 것은 결토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천마의 의도일 것이고, 그렇게 수많은 원령들이 필요한 이유가 분명 따로 있을 것입니다.
단언하듯이 말하는 천우의 어조에 동사왕은 또다시 분노를 드러내며 말했다.
천마가 어째서 귀신 나부랭이들을 모으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 대종사란 작자가 이미 죽은 귀신들도 아니고 멀쩡히 살아 있는 수십만의 병사들을 귀신으로 만들어 무엇에든 이용할 작정을 했다면 이미 인간임을 포기한 것이지,쯧! 어째 천마와 관련된 인간들은 하나같이 그 모양인지''''
이어지는 동사왕의 한심스럽다는 어투에 백양신마는 침음성을 발하며 말했다.
음'''대종사가 비록 패도적인 성격이긴 하지만 피를 갈구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건만'''한데 곤패주, 이 늙은이가 궁금한 것이 한 가지 있네, 천마 조사가 중원에 남겨두었다는 안배라는 것이 바로 무영탑을 말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들은 무영탑을 찾은 것이고'''
백양신마는 문득 천우 일행이 온 뒤로 묵월에게서 들었던 천마무영패와 무영탑에 관한 얘기가 떠올랐기에 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떠한 계기로 천마가 남긴 것을 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그들이 무영탑을 찾았거나 그곳에 들었던 것은 아님을 천우는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알수 있었다. 오히려 그들은 무영탑을 찾으려 했을 것이고, 기환노조라는 자가 천마무영패를 노렸던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인 것이다.
백양신마가 무영탑을 거론하자 천우는 문득 자신이 지니고 있는 천마무영패를 품속에서 꺼내어 들며 말했다.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영탑은 아마도''''
한데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천마무영패를 꺼내 든 순간 천우는 말끝을 흐리며 갑자기 두 눈에서 이채를 발하였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기이한 점이 천무무영패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천마무영패는 환한 달빛을 받아 은은한 홍광을 발하고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그런 홍광을 발하는 천마무영패의 중간에 마치 검은 반점처럼 둥근 달 그림자가 어려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보자 천우는 문득 느껴지는 바가 있어 다시 천마무영패를 반대편으로 뒤집어 달빛에 비추어 보았다. 그러자 그 반대편에도 달그림자가 어렸지만 신기하게도 그것은 검은색이 아닌 푸르스름한 색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천우는 혼잣말처럼 나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세 개의 달'''그렇군, 세 개의 달은 바로 천마무영패를 이르는 말일지도 모르겠군,
비록 독백처럼 나직한 어조로 중얼거린 말이었지만 장내에 있는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의문을 떠올리며 질문을 하기도 전에 갑자기 검은 아수라상에 완전히 휩싸여 있는 대종사에게서 커다란 광소가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하하하! 역시 천마무영패를 네가 지니고 있었구나, 크흐흐!
그 순간 커다란 광소와 함께 대종사의 아수라상에서 엄청난 마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그러한 마기로 인해 몇몇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율스런 공포심을 느끼며 전신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단리종후의 축 늘어져 있던 검이 다시 치켜 올려지며 느릿하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니, 단리종후의 검이 느릿하게 나아간다는 것은 착각일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천우나 동사왕 등은 단리종후의 검 끝이 애초에 미세한 흔들림을 보이다가 그 흔들림이 점점 커지면서 점점 커다란 동심원을 그리며 나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단지 단리종후의 검 끝이 그려내는 수많은 동심원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너무나 빠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검이 느리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느껴졌을 뿐이다.
단리종후는 비로소 무념무아의 상태로 대종사를 향해 최우의 깨달음인 무극일원결을 펼쳐내고 있는것이었다.
그 순간 아수라상에 휩싸여 괴소를 터트리고 있던 대종사의 입에서도 괴이한 음색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아수라지존멸!
외침의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어느덧 아수라상의 외부에 비늘처럼 보이던 흑색 강기의 편린들이 일제히 곤두선 채 마치 검은 빛의 폭발처럼 천지사방으로 비산하기 시작했고, 그 순간 단리종후가 그리고 있던 동심원 역시 한순간 크게 증폭되며 전면의 모든 공간을 점유한 채 달빛마저 삼켜가고 있었다. 그리고 곧 대종사의 아수라상에서 발출된 강기의 편린들이 단리종후가 그러놓은 동심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광경이 이루어졌다.
치르르르르릉!
그러나 그러한 광경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던 사람들 역시 불과 몇 사람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한순간 온 세상이 암흑으로 번져가는 듯한 착각과 함께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이한 소성만을 들을 수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전과 달리 별다른 폭음이나 흙먼지도 일지 않았다. 잠깐 동안 세상이 어둠에 잠겼다가 다시 밝아진 것뿐이었다.
어느새 아수라의 형상이 씻은 듯이 사라진 채 대종사는 다시 평범한 인상을 한 장한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고, 그와 대치하고 있던 단리종후는 여전히 무극검을 앞으로 내민 채 서 있었다.
고고한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모두가 잠시 동안 시간의 흐름이 멈춘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있을 때 처음으로 움직인 사람은 바로 단리종후였다.
아니, 움직였다기보다는 한순간 신형을 비틀거리는 듯하더니 그 자리에 검을 꽃고 주저앉으며 폭포수 같은 선혈을 토해 냈다.
단리종후의 얼굴에는 어느새 거미줄 같은 상흔이 어리기 시작했고, 그의 백의 역시 조각조각 몸에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전신으로도 선혈이 베어 나와 단리종후는 삽시간에 혈인의 모습이 되어갔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눈만 크게 뜬 채 놀람을 드러낼 때, 어느새 천우가 단리종후 곁에 이르러 한 손으로 그를 향해 신비로운 빛을 흘러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단리종후의 전신에 서려 있던 상흔들이 삽시간에 아물려 흘러내리던 피가 멈추기 시작했다.
전신이 지옥불 속에 빠져든 듯한 통즈오가 함께 한동안 정신없이 선혈을 뿜어내던 단리종후는 감자기 그러한 통증이 사라지며 청량감이 밀려들자 비로소 힘없는 눈길을 들어 자신의 곁에서 연신 신비로운 빛을 흘러 넣고 있는 천우를 올려다보았다.
좀 전의 그 충고 ''''고마웠소'''쿨럭!
그 말과 함께 받은 기침을 토해 내며 단리종후가 다시 선혈을 뿜어내자 천우는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별말씀을 '''이제 제게 맡기시고 어서 운기조식을 취하도록 하십시오.
사,사부님!
맹주님!
그제야 멀찍이서 정신을 수습한 무림맹의 인물들과 단리종후의 둘째 제자 하후성이 다급한 외침을 발하며 단리종후가 있는 곳으로 신형을 날려 왔다. 그리고 천우 앞에 도착하여 그 신비로운 광경을 주시하면서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또다시 머뭇거렸다.
어서 모시도록 하시오. 다행히 치명상은 면했으니 운기조식을 취하면 아무 일 없을 것이오.
천우는 단리종후의 외상과 내부의 손상된 장기들도 모두 치유된 것을 확인하고는 힐링의 수법을 거두며 그렇게 말했다.
사실 단리종후는 대종사의 아수라지존공에 의해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생태였다. 내부의 장기도 크게 손상되었고, 잠시라도 그냥 놔두었다면 전신의 피부와 근육이 모두 갈라져 나가 즉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나마 단리종후였기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도 즉사를 면했던 것이다.
하지만 천우가 펼친 힐링의 기운으로 단리종후의 치명적인 상처들은 삽시간에 모두 아물었고, 다행히 뇌와 심장만은 직접적인 손상이 없었기에 목숨을 건진 것이었다.
아티오네스가 있던 세상에서는 아무리 고위급 마법사라 할지라도 단리종후의 부상 정도라면 힐링만으로는 절대 치유할 수 없었을 테지만, 천우가 펼치는 힐링의 수법은 그러한 마법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드래곤의 용언마법이었게에 외부의 상처뿐만이 아니라 내부의 손상된 장기들도 모두 치유가 가능했던 것이다.
손숙량 등이 아직도 혈인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단리종후를 급히 부축하여 물러서자 천우는 냉혹한 얼굴 그대로 대종사를 바라보며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 대답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러한 말에 대종사는 다시 여유로운 표정으로 가벼운 웃음과 함께 말했다.
후후! 너는 본교의 곤패주가 되었으면서도 감히 본교의 대종사인 나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인가?
쓸데없는 말을 하는군.
후후! 질문을 하기 전에 내 말을 먼저 들어보도록 하게. 그러면 궁금증은 아마도 상당 부분 풀릴 테니까 말이야.
천마무영패가 천우에게 있다는 것을 안 이후부터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 듯이 대종사는 천우의 그러한 태도에도 화를 내지 않고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면서 미소와 함께 스스로 상황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강호에 나섰던 것은 바로 천마무영패를 찾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검마 그놈에게만은 은밀히 내 출관을 알기고 천마무영패의 소재에 대해 알아보도록 지시를 내렸는데, 어처구니없게도 그놈은 사소한 일에 휘말려 풍검신 네 손에 죽어버리고 말았지.
천마무영패를 찾는 데 본교 전체를 움직이지 않았던 이유는 소여천 그 녀석의 오히려 방해가 될 우려가 높았기 때문이지. 그래서 나는 소여천 그 녀석이 중언에 심어둔 세력을 이용하기로 했다.
나는 첩자들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무림맹주의 대제자를 처리하고 잠시 그의 행세를 하면서 첩자들을 통해 여러 가지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은밀히 천마무영패의 종적에 대해 알아보다가 나는 뜻밖에도 중원에 천마 조사의 기운을 얻은 자들이 둘이 더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리고 그 중 한 녀석은 오히려 소여천 그 녀석에게 접근해 나를 노리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놈이 소여천에게 붙은 이유는 생각해 보니 분명 내가 지닌 자명천마종을 노렸던 것일 테고, 결국 그놈 또한 천마무영패와 자명천마종의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대종사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의혹 어린 표정들을 짓고 있었지만 동사왕이나 백양신마 등은 여실히 긴장된 표정으로 그 말을 듣고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되자 그놈이 어쩌면 천마무영패의 행방을 알고 있거나 혹은 이미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놈을 처리하며 소여천 그 녀석도 나에 대해 눈치 챌 우려가 있었기에 일단은 그 녀석이 그동안 움직였던 행적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았다. 아무래도 특이한 흔적들을 남기는 녀석들이라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
그러다가 대막의 광풍사가 그 녀석과 그놈이 데리고 다니는 강시들에 의해 몰살을 당했다는 것도 알아낼 수 있었고, 나는 그놈이 굳이 머나먼 대막까지 가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은 분명 천마무영패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한데 광풍사의 유일한 생존자 한 녀석이 다시 끈질기게 그놈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광풍사의 생존자인 그 녀석 입장에서는 씻지 못할 원한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천마 조사의 기운을 얻은 그놈도 일부러 그를 유인하기 위해 애쓰는 흔적이 여실히 보이더군, 그래서 나는 그놈이 아직 천마무영패를 얻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고, 또한 광풍사의 그 마지막 생존자 녀것이 틀림없이 천마무영패와 관련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천마신교의 사람들과 뒤쪽에 서 있던 곡나휼은 대종사에게서 광풍사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딱딱하게 안색을 굳혔다.
대종사는 그런 곡나흉에게 슬쩍 눈길을 주고는 좀 더 짙은 미소와 함께 계속해소 얘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그놈은 무림맹 근처로 와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계속 주변을 맴돌기 시작하더군, 그것은 광풍사의 생존자 녀석도 마찬가지였고 말이야, 그래서 나는 그놈이 소여천 그 녀석의 명으로 너를 기다리는 것임을 짐작했고, 예상대로 네가 광풍사의 생존자 녀석과 함께 무림맹에 온 것을 보고 그놈이 네게 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광풍사의 마지막 생존자 녀석이 너와 함께 묵월을 따라 본교로 향했으니 나 역시 당연히 본교로 돌아와야 했던 것이다.
다만 묵월, 저 녀석이 엉뚱한 길을 택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돌아가야 하는 척하기는 했지만,이미 네가 무림맹에 나타나기로 한 날짜에 맞추어 사전에 제독태감에게 출병하도록 해놓았기에 당연히 도중에 저들을 만나서 이곳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이지, 그 때문에 네가 본교에서 어떠한 활약을 했는지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쉽지만 말이야.
대종사는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는 여전히 무심한 태도로 서 있는 천우를 응시하며 다시 가벼운 읏음소리를 발하였다.
후후! 그리고 굳이 번거롭게 황실을 끌어들인 이유는 물론 상황에 따라 네 녀석을 상대하게 할 목적도 있긴 했지만, 그거야 어찌 되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보다는 다른 뜻이 있었기 때문이지, 한데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니 너는 그것도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더구나, 후후후!
그동안은 동사왕 저 녀석에게 휘둘리고 있는 애송이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무공뿐만이 아니라 머리까지 그토록 명석하니 너는 정말 여러모로 나를 감탄시키는구나,
아무튼 처음의 계획으로는 본교의 고수들로 하여금 이곳에 온 병사들과 중원 무림인들을 모두 처리할 계획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네가 소여천을 죽이고 본교를 작아하리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물론 네가 본교에 도착한 이후 원로원의 비호를 받을 것이라고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원로원에서도 모두가 너를 인정하지는 않으려 했을 것이고, 또한 소여천 그 녀석이 장악하고 있는 본교의 세력을 감안한다면 너느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대종사의 말이 거기까지 이어지자 묵묵히 듣고만 있던 천우가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이 얼마나 음모를 치밀하게 꾸몄는가 하는 것은 관심없다. 다만 무영탑이나 천마무영패의 용도가 궁금할 뿐, 당신이 그에 대해 설명해 준다면 천마무영패를 넘겨주도록 하지,
천우의 제악이 매우 뜻밖인 듯 대종사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호오! 천마무영패를 순순히 내게 넘겨주겠다는 말인가? 대단한 자신감이로군, 후후! 하지만 천마무영패가 이곳에 있는 이상 굳이 내 손안에 들어오지 않아도 상관없는 일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곧 알 수 있을 것이니 너무 조급해 할 필요 없다.
뭐 말해 줘도 상관은 없겠지만 네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또한 나를 많이 놀라게 했으니 나도 한 번쯤은 너를 놀래 주어야 공평하지 않겠느냐.
시종일관 농담하듯이 여유롭게 응대하는 대종사를 보면서 천우는 내무심의 냉막한 얼굴에 보일 듯 말 듯한 조소를 머금고 말했다.
어차피 당신의 목적은 천마의 마령을 불러내어 그 힘을 얻거나, 그도 아니라면 그를 부활시키려는 것이겠지, 아니, 어쩌면 천마가 살아 있는지도 모르겠군, 그것이 놀랄 일이라면 별로 기대는 되지 않는군, 다만 그 방법이 조금 궁금했을 뿐이지만'''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면 좀 더 기다려주도록 하지.
천우의 말에 이제껏 여유로움을 보이던 대종사에게서 미소가 씻은 듯이 걷히며 안색마저 딱딱하게 굳어졌다.
마지막 말의 의미가 방법을 들었다면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자신을 처리하겠다는 의미임을 대종사도 충분히 알아들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의 안색이 굳어진 것은 아니었다.
너는 '''왜 그런 생각을 한 것이냐? 천마 조사께서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 아니냐?
대종사의 표정이 굳어진 이유는 천우의 말 중에 천마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 때문이었다. 이미 많은 부분을 알고 있는 천우였고, 또한 지금껏 천우가 한 말은 거의 모두가 사실에 근접해 있음을 대종사 역시 잘 알고 있었기에 천우의 그러한 말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천우는 대종사의 굳어진 표정을 보며 여전히 조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말했다.
천만에, 애초에 천마에 관해서 들었을 때부터 나는 아직 그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지, 그런 의미에서 당신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모두 부질없는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군, 그가 살아 있다면 당신은 단지 그의 장난에 휘말린 것이 될 테고, 그렇지 않다 해도 그가 누군가를 위해 안배를 남겼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대종사는 천우의 말을 듣자 단지 근거없는 짐작뿐임을 알고는 다시 여유로운 표정을 회복하며 나직한 웃음소리를 흘러내였다.
후후후'''천마 조시께서 살아 계실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다니, 이제 보니 너는 무척이나 엉뚱한 구석이 있구나.
대종사는 그 말과 함께 이제는 천중을 벗어나 동쪽으로 기울어가는 만월을 힐끗 응시하고는 다시 천우에게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밤이 깊어가는 듯하니 우선은 이쯤에서 주변 정리부터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곳에 온 병사들은 너를 노리고 온 것이고, 너 또한 황실과는 벌로 감정이 좋지 않을 테니 본교의 녀석들로 하여금 먼저 병사들을 처리토록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한데'''
대종사의 은근한 말에 천우는 냉막한 어조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황실과는 더 이상 부딪치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니 그 제안은 따르지 못하겠군,
천우의 단호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대종사는 싱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니 정말 유감이로구나, 할 수 없지, 그렇다면 번거롭더라도 내가 직접 처리를 하는 수밖에.
지금에 와서 대종사가 천마무영패보다는 오히려 병사들의 목숨에 대해 집착을 보이자 천우는 눈빛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결국 저 많은 병사들을 목숨을 원하는 이유가 저들의 목숨이 천마를 불러내기 위한 조건인 것인가?
글쎄 '''그렇다고도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지.
이유가 무엇인든 허락할 수 없다.
허락? 푸하하하! 정말 재미있는 표현이로구나, 흐흐흐흐흐흐!
대종사는 천우의 말에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한참을 그렇게 웃던 대종사는 한순간 웃음을 뚝 그치더니 의미심장한 어투로 말했다.
너의 그 광오함은 정말 견줄 자가 없겠구나, 그런 의미에서 네게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더 해주도록 하마, 오래 전에 그러니까 내가 초마의 경지에 들어섰을 무렵, 나는 스스로도 모르고 있던 본신의 자아에 대해 각성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천기의 흐름을 느껴볼 수 있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내가  천마 조사와 같은 천마성의 주인이라는 것보다는 당세에 나 외에도 다른 오혈성의 주인들과 그에 대응해 자미와 천무성의 기운을 받은 자들까지 등장할 조짐이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차는 이었지만 역시 그때 보았던 천기대로 칠성좌의 주인들이 모두 현세에 존재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지.
대종사는 말을 하면서 천우의 반응이 궁금한 듯 기색을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천우는 냉막한 표정으로 무심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모습에 대종사는 짐짓 맥이 빠진다는 투로 말했다.
이번에는 네가 충분히 관심을 보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구나, 그것도 알고 있었다는 것인가? 아무튼 내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너는 분명 오혈성 중 천살성의 기운을 타고난 자일 것이다.
한데 의문서러운 것은 네가 아직 천살성으로서의 각성을 한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나이에 비해서 비정상적일 정도로 강한 것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저렇듯 온몸에서 서기를 줄줄이 흘리고 있는 자미성의 기운을 지닌 녀석과 함께 있으면서도 천살의 기운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네가 천살의 주인이 아니라면 아무리 광고절금의 무학을 익히고 있다 하더라도 결코 오혈성중 천괴의 주인인 소여천 그 녀석이나 다른 두 녀석도 네게 그렇게 쉽게 당했을 리가 없었을 테니 네가 천살이 아니라고는 더더욱 생각할 수가 없구나,
그 말과 함께 대종사는 다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천살성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오혈성의 수좌인 천마성의 주인에게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냐?
대종사의 말을 들으면서 천우는 문득 예전에 검마가 죽기 전에 남겼던 말을 떠올렸다.
대종사가 천기를 잘못 짚었다고 했던가''''그러고 보니 그는 무영탑의 부름에 응하지 말라는 말을  했는데, 결국 검마는 천마의 마령이 강림하게 될 것을 우려했던 모양이로군,
천우가 무표정하게 서서 검마가 했던 말을 속으로 되뇌고 있을 때 다시 대종사의 음성이 울려 나왔다.
사실 염두에 두었던 것은 천살인 너를 비롯해 다른 세 놈들이 아니라 저기 서 있는 자미성의 기운을 타고난 녀석과 아직 찾지 못한 천무의 기운을 타고난 녀석이었는데, 엉뚱하게도 네가 걸림돌이 되어 나타날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아무튼 더 이상 다른 말은 필요없을 듯하니 이쯤에서 마무리를 짓도록 하자, 그리고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네 풍검이 어느 정도인지도 직접 견식해 보고 싶다마는 할 일이 늘었으니 그러지 못함이 아쉽구나.
그 말과 함께 대종사의 한쪽 팔이 천천히 천중을 향해 들어 올려지고 있었다. 더불어 대종사의 팔소매가 조금 흘러내리면서 그의 팔목에 채워져 있는 투박해 보이는 묵빛 철환이 달빛아래 들러났다. 그 순간, 천마신교 사람들의 안색이 번하며 백양신마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자명''''천마종!



4장 뒤틀린 인과율



자명천마종? 저 팔목에 채우져 있는 철환을 말하는 겁니까?
단리종후의 부상이 심해 천우가 나서는 바람에 대종사를 상대할 기회를 놓친 동사왕이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다가 백양신마의 외침에 의문성을 토했다.
그렇네''''저 묵빛 철환이 바로 본교 대종사의 신물인 자명천마종일세.
백양신마는 여전히 대종사의 팔목에 채워져 있는 철환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 채 동사왕의 물음에 침중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동사왕이 다시 의문을 표시했다.
한데 어째서 팔찌에 종이라는 명칭이 붙은 겁니까?
저 팔찌의 표면에는 종 모양을 이룬 108개의 아주 작은 홈과 그 주위로도 기이한 문양들이 빈틈없이 정교하게 음각되어 있네, 물론 모습만으로 보자면 그러한 것들을 종이라고 표현하긴 힘들겠지만 아무튼 천마 조사께서 자명천마종이라 명명하셨기에 그 음각된 모양을 종이라고 짐작하는 것일세.
천우도 백양신마의 말을 들으며 자명천마종을 바라보았는데, 그 순간 그의 의식 속에서 아티오네스의 음성이 울려왔다.
[이봐! 저 문양들은 분명'''']
[룬어로군,]
[그래, 틀림없이 룬어들이 새겨진 것이다.]
아티오네스가 천우에게 마법을 가르치면서 마법의 근간이 되는 모든 룬어들의 조합을 천우의 의식 속에 각인시켜 두었기에 천우 역시 자명천마종에 새겨진 기이한 문양들이 룬어임을 알아본 것이다.
[그리고 저 팔찌에 새겨진 문양들의 정교함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저것은 드워프들의 솜씨인 것 같다.]
[드워프?]
[그래, 내가 있던 곳의 장인 종족들이지, 그들은 타고난 장인들로서 아무리 솜씨가 좋은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따를 수가 없지, 그리고 무엇보다 드래곤인 내가 드워프들이 만든 물건을 못 알아본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건 어째서지?]
[그야 드워프들은''''큼! 그냥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만 알아두어라, 아무튼 지금 중요한 것은, 저 물건에 룬어가 새겨져 있는 것도 그렇지만 저 물건이 드워프들이 만든 것이 틀림없는 이상 천마라는 인간은 분명 내가 있던 세계에 다녀온 것이 확실하다,]
그때 헬로가드의 괴이한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낄낄!드래곤들에게 있어 드워프들은 절대적인 착취의 대상이지, 모든 드래곤들의 장신구들과 그들이 세공한 보석으로 가득 채워놓았을 것이다. 그러니 드워프들이 만든 물건을 못 알아본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흥! 헬로가드, 말은 똑바로 해라, 그건 착취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당한 거래다. 장신의 영역에서 광산을 개발하는 것을 허락하는 대가로 조금의 사례를 받는 것인데 그것이 어찌 착취라는 것이냐.]
[낄낄!그거야 너희 드래곤들 생각이고, 당하는 드워프들 입장에서야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이봐, 요즘 헬로가드 저 녀석이 지닌 권능에 대해서 흥미가 많은 것 같던데, 내가 저 녀석의 숨겨진 권능들을 모두 알아낼 수 있는 쉬운 방법을 알려줄까?]
[무, 무슨 소리냐?이미 내가 지닌 권능들을 모두 훔쳐가 놓고서,]
[흥! 명색이 마왕인데 겨우 그 정도 몇 가지 잔재주가 다라면 자나가던 실프도 웃겠다.]
[저, 정말이다! 더 이상 털어봐야 먼지도 안 나온다니까.]
[그것도 내가 알려주는 방법대로라면 사실인지 금방 알 수 있지, 뭐냐 하면''''그냥 저 녀석의 자아를 의식 속에 흡수해 버리면 된자, 그러면 저 녀석이 지닌 모든 것이 네 것이 되는 거지, 어때, 간단하지?]
[이,이,슬라임보다 치사한 도마뱀 녀석 같으니! 네가 그러고도 드래곤이라 할 수 있느냐!]
[뭐야? 오크보다 멍청한 마왕 주제에 누구보고 치사하다는 것이냐!]
또다시 시작된 아티오네스와 헬로가드의 말싸음에 천우가 슬쩍 눈살을 찌푸릴 때 대종사는 달빛 아래 자명천마종을 드러낸 후 기괴하게 미소 지으며 천우를 향해 말했다.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명천마종은 전설상의 신물일 뿐만 아니라 오대마병의 수좌를 차지하고 있는 절대마병이기도 하지, 자명천마종을 울리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바로 전설이 실현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바로 절대마병으로서의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과연 네가 견디어낼 수 있을지 보자꾸나.
그때 백양신마가 천우의 뒤편에서 약간의 걱정스러움을 담은 표정으로 동사왕을 향해 말했다.
이보게, 아무래도 자네와 나도 좀 물러서 있는 것이 좋을 것같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오?
동사왕이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백양신마를 쳐다보며 묻자 백양신마는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대종사가 자명천마종을 사용하기로 했다면 자네와 나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일세, 전해지는 얘기로는 자명천마종이 절대마병으로서의 위력을 발휘하면 태산이라 할지라도 견디지 못한다고 하네, 그리고 자네와 내가 가까이 있으면 곤패주 역시 신경이 쓰일 것 같아서 하는 말일세.
하지만 동사왕은 어림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그런 말에 겁먹을 내가 아니오, 그리고 나 역시 생사경의 경지에 이른 몸이니 정 걱정이 되신다면 신마께서나'''어라?
동사왕은 여전히 전면을 응시하면서서 가소롭다는 투로 말하다가 어눌한 의문성을 발했다. 불현듯 천우의 신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곧이어 동사왕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해지며 입은 큰 항아리만큼이나 떡 벌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동사왕뿐만 아니라 다시금 그를 설득하려던 백양신마 역시 별다르지 않았다.
저, 저게'''도대체 무슨 일''''천 아우는 대체 어디로?
동사왕이 천우의 뒤편에서 백양신마와 가벼운 실랑이를 하는 동안 대종사는 여전히 괴이한 미소와 함께 달빛 아래 드러난 자명천마종을 통해 순간적으로 기운을 응집시켜 뿜어내었다.
찌르르르르릉!
하지만 그 음향은 오로지 천우만이 들을 수 있는, 아니 느낄 수 있는 음향이었다. 천중을 향해 들린 자명천마종에서 터져 나온 음향은 인간으로서는 들을 수 없는 음역이었고, 그 음파는 자명천마종을 중심으로 대기를 압축시켜 나가고 있었다.
그러한 음파가 사물에 닿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불문가지였고, 그것을 느낀 순간 천우의 안색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물론 아무리 대단한 음파라 하더라도 천우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자명천마종에서 터져 나온 음파가 자신에게만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그리고 이순간 설사 대종사를 죽인다 해도 이미 퍼지기 사작한 자명천마종의 가공할 음파는 어쩔 수 없는 것 또한 문제였다. 결국 대종사는 천우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온 병사들은 물론 이고 천마신교 측 사람들의 안위조차 무시한 채 음파를 발산해 낸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설사 전면으로 몰려오는 음파를 차단시킨다 하더라도 후면과 측면으로 퍼져 나간 가공할 음파에 의해 수없이 많은 희생자들이 생기게 될 터였다. 실로 비슈누의 원반이 가진 진정한 위력에 못지않은, 어떤 면에서는 더욱 가공할 살상력을 지닌 자명천마종이었고, 고금오대마병의 수좌라는 별칭을 무색하게 만드는 위력이었다.
천우는 대상을 가리지 않는 대종사의 그러한 행위에 대해 다시금 분노를 느꼈고, 수많은 병사들과 무림인들이 쓸데없이 희생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기에 전면에서 몰려오는 음파를 역으로 가르며 빛살처럼 대종사를 향해 신형을 접근시켰다.
대종사는 전력을 기울여 자명천마종을 울린 직후에 갑자기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하더니 어느새 검은 인형 하나가 자신의 코앞에서 녹슨 철검을 느릿하게 뻗어내자 두 눈을 경악으로 흡떴다.
자신을 향해서인지 아니면 허공을 향해서 느리게만 느껴지는 녹슨 철검을 뻗어오는 그가 천우임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이후에 어떤 생각을 하기도 전에 대종사는 마치 수천 개의 철종이 한꺼번에 귓가에서 깨져 나가는 듯한 엄청난 굉음을 느끼며 갑자기 세상이 사라지기라도 한 듯 시야마저도 아무것도 보고 느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동사왕은 갑자기 시야에서 천우가 사리진 듯 하더니 대종사가 서 있던 자리에서 반경 십여 장에 달하는 혼탁하면서도 둥근 모양을 한 엄청난 크기의 반구가 갑작스럽게 생겨난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그 혼탁한 반구는 곧 이리저리 이지러지는 듯하더니 사방으로 먼지를 풀풀 피워내며 모양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제야 동사왕 등은 그 혼탁한 반구가 땅에서 피어오른 먼지로 이루어졌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동사왕 등은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기에 사방으로 흩어지는 먼지 구름들을 쳐다보며 얼떨떨해 있다가 차츰 가라앉는 먼지 속에서 대종사와 천우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느새 천 아우가 저기에''''한데''''대종사의 얼굴이'''
처음에는 그들이 서로 손만 내밀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곧 녹슨 철검을 하단으로 내린 채 등을 보이고 있는 천우의 표정을 볼 수 없어도 대종사의 얼굴은 확인할 수 있었기에 그 기괴한 모습에 또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천우의 흑의는 흩날리는 먼지 속에서도 여전히 말끔함을 과시하고 있었지만 대종사의 복장은 온통 먼지로 뒤덮여 있었으며, 머리와 얼굴마저도 마치 분을 바른 듯 희뿌옇게 변해 있는 상태에서 두 눈과 코, 입 그리고 귀에서까지 선혈을 줄줄 흘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먼지로 뒤덮여 오관을 구분하기 힘든 상태에서 그렇게 붉은 선혈을 줄줄 흘려내고 있느니 야차가 따로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천우는 자명천마종에서 발해진 음파가 사방으로 번져 나가자 다른 희생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풍검으로 음파를 가르며 대종사에게 바짝 접근한 후에 그 상태에서 오히려 선풍검을 펼쳐 음파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결계나 다름없는 검막을 친 것이었다. 그러자 자명천마종에서 발해진 음파는 천우가 발휘한 선풍검의 검막을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내부에서 충돌을 일으킨 것이었다.
이미 권능으로까지 발전해 있는 풍검이었다. 공기를 압축시켜 나가던 초음파가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선풍검의 검막 안에서 충돌을 일으켰으니 그 결과는 엄청난 내부의 폭발이었고, 그 폭발의 잔해로 이루어진 먼지 구름들 역시 천우가 만들어놓은 검막 안을 빠져나가지 못해 혼탁하면서도 거대한 반구 형태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 모든 일들이 천우가 자명천마종에서 발해진 음파를 따라 잡으며 벌인 일이었으니 아무리 동사왕이라 해도 눈으로 그 과정을 제대로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대종사 또한 직경 20장이나 되는 거대한 종 안에서 스스로 힘껏 종을 친 격이었으니 그 여파로 인해 고막과 눈동자가 모두 터져 나가 버렸고, 기혈 또한 제멋대로 뒤틀려 아직도 상황 파악은 물론 제대로 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얼마나 지났을지 모를 태곳적 같은 적막이 흐른 후에 사람들은 서서히 보이는 상황에 대해서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풍검신이 마교 대종사를 이겼다.
그러한 생각들에 장내는 서서히 술렁이기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기뻐하는 사람들은 천우를 따르는 사람들과, 제독태감의 무리들을 제외한 관부의인물들, 그리고 병사들을 따라온 정파 무림인들이었다.
정파 무림인들이라고 해서 천우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종사와의 대화 중에 천마의 부활이 거론 되기 시작하자 그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어도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마교 대종사의 패배는 일단 안도감과 함께 기쁨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반대로 천마건곤대전의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천우에게 굴복한 대부분의 천마신교 측 사람들은 대종사의 출현과 천마조사의 부활에 대해 엄청난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었고, 아무리 곤패주인 풍검신이 강하다 하더라도 결코 대종사를 당해 내지는 못하리라고 여기고 있었다.
한테 어찌 된 영문인지도 모른 채 대종사가 참혹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그들로서는 자연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하든 천우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대종사를 무심한 눈길로 응시하고 있다가 그의 고막이 터져 나갔기에 심어로써 대종사의 정신을 일깨웠다.
{이제 천마를 불러낼 차례인 것 같군, 여력이 없다면 도와주도록 하지,]
천우의 심어가 뇌리에 울리자 대종사는 전신을 한차례 부르르 떨더니 주춤주춤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미쳤어, 크큭! 하늘이 미친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악귀나찰과 같은 형상으로 마치 미친 사람처럼 떠듬거리던 대종사는 갑자기 하늘을 우러러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하! 천살성의 기운을 타고 난 자가 아니라 천살신 그 자체를 내려 보내다니, 하늘이 미치지 않고서야''' 크흐흐흐흐! 그렇다면 도대체 천마 당신이 남긴 안배는 무엇이란 말인가.아무리 수많은 원혼들을 이용해 절대마령으로부터 스스로의 의지를 지킨다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다는 것이지? 내 의지를 지켜봐야  어차피 한낱 인간에 불과한 것을'''
크크큭! 결국 위대한 당신조차 하늘로부터 우롱을 당한 것인가, 그도 아니라면 당신 역시 나를 우롱한 것인가. 크흐흐''''좋다! 어느 쪽이든 내 육신을 제물로 바치겠다. 세상의 파멸이 예정된 것이라면 미천한 인간은 따라야만 하겠지, 크하하하하!
비록 안구와 고막이 처져 나가고 기혈이 뒤엉켜 있는 대종사였지만 그가 공력을 실어 외치는 음성과 웃음소리는 광대한 초원을 들썩이며 사람들이 귀를 부여잡게 만들고 있었다. 더불어 얼마 전 단리맹주와의 격돌로 한차례  소요가 있은 후 간신히 진정시켰던 전마들도 또다시 놀라서 사방에서 울음소리를 게워냈다.
그런 와중에 자명천마종이 채워져 있는 대종사의 한쪽 팔이 다시 천중으로 들리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괴이한 종음이 터져 나왔다.
찌르릉! 찌릉! 찌르르릉!
마치 수십 개의 종으로 연주를 하는 듯 괴이한 운율을 지닌 종음이었다.
야공을 울리는 괴이한 종소리에 다시금 긴장하며 여전히 한쪽 팔을 높이 치켜들고 있는 대종사를 주시했다.
천우는 이번의 종음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느꼈기에 그 역시 무심한 태도로 대종사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천우가 품속에서 빼어 든 채 검을 쥐지 않은 왼손에 들고 있던 천마무영패에서 기이한 반응이 일어났다. 종음에 맞추어 천마무영패가 스스로 가벼운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자명천마종의 종음이 계속 이어질수록 그 진동은 점점 강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체인 양 스스로 천우의 손에서 빠져나가려 하는 것 같았다. 한데 그 힘 또한 엄청나서 천우가 아니라면 천마무영패를 손아귀에 쥐고 있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런 천마무영패를 천우는 꽉 움켜진 채 다시 손을 올려 바라보았다. 그러자 전면 쪽에 어려 있는 검은색의 달그림자가 마치 물결 속의 그림자처럼 이리저리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보자 천우는 짐작이 가는 바가 있어 천마무영패를 움켜진 손에서 슬며시 힘을 풀었다.
그 순간 천마무영패는 마치 날개가 달린 새처럼 천우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서서히 허공으로 치솟더니 기울어가는 달빛을 투과시켜 지상에 점점 큰 광원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도 작은 홍옥패가 스스로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당연히 천우에 의해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대종사에 의해 기이한 종소리가 울려 나오기 시작한 직후에 벌어진 일이라 그런 천우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문스러워할 따름이었다.
그때 자명천마종의 울림으로 인해 잠시 말다툼을 멈추었던 아티오네스와 헬로가드의 외침이 거의 동시에 들려왔다.
[저 소리는''''틀림없이 차원의 문을 여는 마법 주문이다.]
[대단한데? 물체에 룬어를 새겨 마나의 기운을 뿜어내는 것만으로 마법 주문이 이루어지도록 하다니!]
[결국 저 패는 차원이동을 위한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물건이었군, 그럼 저 패 역시도 이곳의 물건이 아니겠군,그래.]
[흐흐! 애초에 차원의 좌표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항상 유동적이기 때문이자. 결국 두 차원을 실수없이 오가려면 양쪽에 확실한 매개체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일반적인 마법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마왕의 권능을 이용한 것이라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놀람성과 감탄성에 이어 다시 헬로가드의 자부심 가득한 음성이 이어지는 동안, 달빛을 투과시키며 허공 중으로 떠오르던 천마무영패가 십여 장 정도에 이르러 딱 멈추어 섰다. 그리고 그 순간 약속이나 한 듯이 자명천마종에서 흘러나오던 괴이한 종음도 뚝 끊겼다.
처음 천마무영패가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 직경 한 자 정도에 불과하던 광원이 무려 삼 장여에 달하는 큰 원으로 변해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붉은빛뿐이었지만 지상에 그려지는 광원이 점점 커질수록 중심에 푸른색의 원이 섞이기 시작했고, 푸른색과 붉은색의 원이 더욱 커지면서 정중앙은 빛을 투과시키지 않는 듯 오히려 짙은 어둠이 자리했다.
하지만 손바닥만 한 옥패가 달빛을 가린다고 해서 그렇게 크고 짙은 어둠이 생길 수 있겠는가? 더욱이 그 중심에 서 있는 천우와 대종사의 모습은 짙은 어둠에 가려 일반인들의 시야로는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으니 절대 평범한 어둠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느끼지 못해도 그 어둠의 중심에 서 있는 천우로서는 먹물보다 더 짙은 어둠의 빛이 천마무영패로부터 뿌려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백양신마로부터 넋두리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저건''''마치 형체가 없는 빛으로 이루어진 탑의 형태가 아닌가? 게다가 땅에 비추어진 저 형태는 '''혈월과 청월, 그리고 흑월의 형태'''하늘에 떠 있는 서기로운 달이 아닌 지상으로 추락한 세 개의 달'''바로 영겁과 파멸과 혼돈의 달''''
백양신마의 떠듬거리는 말이 이어지는 동안 천우는 갑자기 자신이 딛고 선 바닥이 기이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이봐! 아무래도 지금 서 있는 곳에 차원문이 열릴 것 같은데 어서 피하는게 좋겠다. 잘못하면 저곳에서 나오려는 놈과 하나로 동화돼 버릴 수도 있다고, 그 상태라면 아무리 너라 해도 목숨을 장담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설혹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말 괴물이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아티오네스의 충고에 천우가 흠칫하며 미끄러지듯이 움직여 가장 외곽의 혈원 밖으로 물러서자, 곧이어 천우가 서 있던 짙은 어둠이 밴 지면이 마치 물결치듯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대종사는 아무것도 보고 들을 수 없는 상태였지만 자신이 딛고 선 지면이 일렁이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을 느끼자 전설의 실현이 도래하고 있음을 알고는 몸의 중심을 잡으며 다시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하! 드디어 오는 건가, 마신이여! 내 피를, 내 영혼을 주겠다, 나를 우롱한, 그리고 그대를 우롱한 하늘을 응징하라, 세상의 모두를 피로 적시고 모든 것을 파괴하라'''' 큭! 커커컥!
하늘을 향해 미친 듯이 저주를 퍼붓던 대종사는 갑자기 숨이 막히는 듯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답답한 신음성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온통 피범벅이 되어 있는 대종사의 얼굴이 서서히 기이한 모양세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입 부분이 점점 앞으로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머리에서는 조금씩 뿔이 돋았으며 팔다리는 점점 길어지고 몸체는 부풀어 오르며 약간씩 앞으로 굽어지기 시작했다.
커컥! 천, 천마시여''''너, 너무 고통스러운'''어, 어서 빨리'''''꺼헉!
그 지독한 고통에 대종사는 여전히 자신의 목을 부여잡은 채 숨 막히는 신음성과 함께 변하가 시작한 입매로 간신히 떠듬거렸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신체의 변화는 여전히 느릿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에 모두가 심장이 멎을 만큼 놀라며 경악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어느 정도 구체적인 모습이 갖춰지기 시작하자 동사왕의 경악성이 가장 먼저 솔직하게 터져 나왔다.
저, 저것'''염소 새끼아냐?
[바,바포메트?]
[저, 저런! 나오라는 천마 놈은 안 나오고 왜 저 변태 마왕 녀석이''']
[헬로가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바포메트라면 분명 마왕 급인데 어떻게 이계인 이곳에''''?]
[낸들 아냐, 저놈이 비록 마왕들의 수치이자 최하급 마왕이긴 하지만 계약은 몰라도 직접 소환 같은 것이  될 리가 없는데''''혹시 저놈, 소멸을 각오하고 스스로 마계에서 뛰쳐나온 것 아냐?]
[뭐?그럼 마왕들도 현상계에 본신으로 나설 방법이 있다는 말이냐?]
아티오네스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기에 놀라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하고자 하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말했듯이 소멸을 각오한다면 말이야. 물론 그것도 그냥 뛰쳐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반드시 소환의 형식에 응해서 강림을 해야 하지.
하지만 마왕이 그렇게 소환에 응해 강림하게 되면 현상계에서의 죽음이 곧 소멸로 이어지게 되는데 어떤 미친 마왕 녀석이 자신의 소멸을 전제로 그런 짓을 하겠어, 당연히 없지, 마계가 생긴 이래 그런 미친 짓을 벌인 마왕은 단 한 놈도 없었고, 그러나 마왕이 현상계에 본신으로 나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인 거다.
게다가 현상계의 육신이 형편없다면 오히려 계약에 의한 강림보다도  훨씬 더 힘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이고, 재수없으면 강림하는 순간이 곧 소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 짓을 할리가 없지.]
[하지만 저건'''분명 바포메트가 맞잖아?]
[끙! 그래서 나도 놀라고 있잖아.]
대종사의 자명천마종에 의해 나타난 것이 천마가 아니라 예전에 상대했던 발록이라는 괴물과 같은 존재임을 알자 천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 대상이 누구건 겁이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대했던 천마가 아니었기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당연했다.
[발록이라는 괴물보다는 강한 놈인가 보군,]
[뭐''''그렇다고도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지, 발록이 저녀석에게 대항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순수한 전투력 면에서는 저 녀석이 발록보다 위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마왕이 지니는 특유의 권능이 몇 가지 있으니 때에 따라서는 그 권능이 발록보다 더 위험한 요소가 될 수 있는 거지.
물론 내 권능을 몽땅 훔쳐간 네게는 통하지 않을 테니 그저 재롱에 불과하겠지만'''그렇다고 전투력도 아주 약한 것은 아니니 우습게 볼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인간 세상에서는 주제넘게 때때로 마신으로 취급받기도 하는 놈이니까.]
천우의 의식 속에서 대화가 이루어지는 동안 대종사의 얼굴과 몸은 거의 변화가 끝나 이미 인간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달빛마저 삼킬 듯한 검은색의 거대한 두 개의 뿔울 단 염소형상의 머리에 구부정하게 휜 몸, 그리고 엄청나게 길어진 팔다리'''전체적으로 동사왕의 말처럼 거대한 염소가 두 발로 서있는 모습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툭!
마지막으로 안면의 눈 부위에 있던 대종사의 살점이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며 마침내 바포메트의 검붉은 마계안이 드러났다.
그 순간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며 벌벌 떨기 시작했다. 사람들보다 더욱 본능에 민감한 말들이 먼저 사방에서 미친 듯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잘 훈련된 전마들임에도 불구하고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앞발을 치켜들며 난동을 부렸고, 병사가 타고 있건 말건 대책없이 사방으로 도주하는 말들도 속출하고 있었다.
그 혼란 속에서 검붉은 마계안으로 장내를 한번 훑어본 바포메트는 입을 벌리지 않고도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음성을 발하며 불만을 표시했다.
충분히 본신으로 화할 정도의 준비가 되어 있을 거라 하더니 겨우 반을 넘을 정도라니 실망스럽군, 하지만 계약에 의한 강림에 비할 바는 아니니 이 정도로도 충분하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그 말의 의미 같은 것은 생각해 볼 여력도 없었고, 개중에 강자라 할 수 있는 사람들만 간신히 떨려오는 마음을 다잡고 있을 뿐이었다.
이, 이럴 수가! 자명천마종의 전설이 천마 조사의 강림이 아니라 저따위 악마의 강림이라니'''''
두려움에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하는 와중에도 천마신교의 장로였던 구양헌이 믿을 수 없다는 기색으로 넋두리처럼 그렇게 말하자 비포메트의 검붉은 마계안이 그에게로 향했다.
악마라''''틀린 말은 아니지만 자존심이 상하는군, 죽어라!
커억! 아, 악마'''
단순한 말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구양헌은 동공과 고막이 터져 나가며 조금 전의 대종사의 형상처럼 칠공에서 핏줄기를 뿜어내며 간신히 악마라는 말만 남기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그것을 본 주위 사람들은 더욱 경악하여 다급히 호신강기들을 끌어놀리며 두려움이 밴 눈길로 바포메트를 응시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천우는 자신이 잠깐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에 구양헌이 바포메트란 괴물에 의해 그렇게 어이없이 죽어버리자 드물게 두 눈에 분노의 기색을 떠올렸다.
하지만 일전에 있었던 발록과의 싸움으로 섣부른 격돌은 주위 사람들을 매우 위험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한 마법 상의 파워 워드 킬과 유사한 저 수법에서 사람들을 보호할 방법이 달리 없었으므로 일단은 주위 사람들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 먼저였다. 때문에 천우는 분노를 잠시 억누르며 동사왕에게 심어를 보냈다.
[형님, 이 괴물은 일전에 보았던 박쥐 괴물보다 더 위험한 놈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을 데리고 지금 즉시 멀리 피하도록 하십시오.]
천우의 심어가 들려오자 동사왕은 본능적으로 떨려오는 몸을 가누기 위해 애쓰고 있다가 흠칫 놀라며 자신 역시 심어로 말했다.
[괜찮겠는가?]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다만 일전에 보셨겠지만 이 괴물을 상대하면서 주변을 돌보기는 어렵습니다.]
[알겠네, 부디 조심하게나.]
예전의 그 무시무시한 박쥐 괴물보다 더 위험하다는 말에 동사왕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지만 천우의 말대로 자신을 비롯해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봐야 도움은커녕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에. 즉시 멍하니 서 있는 백양신마를 비롯해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뒤쪽의 사람들을 이끌고 멀찍이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으려 하는 세운령이나 조아를 강제로 끌고 가다시피 했다.
바포메트의 눈길이 그런 그들에게로 향할 때 천우가 천천히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덕분에 동사왕 등에게로 향하던 바포메트의 눈길이 천우에게 고정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바포메트의 마계안에는 언뜻 희열이 감돌았다.
바로 너로군,
무슨 말인가?
시치미를 뗄 작정인가? 평소의 그 오만함은 어디로 가고 발뺌을 하는 거지?
천우는 천마 대신 나타난 바포메트란 괴물의 말에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너는 천마가 보낸 것인가?
글쎄'''보냈다기보다는 제안을 받고 내가 결정한 것이지, 일종의 거래라고나 할까?
여전히 석연치 않은 대답이었지만 그 말로 인해 천우는 천마가 아직까지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슨 거래를 말하는 것인가? 그리고 어째서 천마 자신이 직접 오지 않은 것이지?
이런, 그걸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로군, 하지만 어쩌지? 애초부터 모든 계획은 천마 대신 내가 오기로 되어 있었던 것인데, 물론 천마가 오는 것으로 알게끔 만들어두기는 했지만 말이야.
이해가 가지 않는군, 네가 오는데 왜 굳이 그런 안배가 필요했던 것이지?
그야 몇 가지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지, 그 중 하나는 당연히 너 때문이기도 하고 말이야.
나 때문이란 말인가?
그렇다, 헬로가드,
그 순간 천우의 검미가 또다시 꿈틀거렸고, 그의 의식 속에서는 헬로가드의 놀람성이 터져 나왔다.
[아니! 그 죽일 놈이 왜 나 때문에 그런 안배를 펼쳐놓았다는 것이지?]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헬로가드.]
[몰라'''나도 모른다니까. 가만'''지금 저놈이 너를 보고 내 이름을 불렀지?그렇지?]
[정확히 들었군.]
[저, 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하급 마왕 놈이 감히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어서 저놈의 보기 싫은 주둥이를 뭉개버리지 않고 뭐 하는 거야! 아니지, 이봐, 부탁인데 네 몸좀 잠시 빌려 쓰자, 내가 이 자리에서 저 변태 염소 놈을 깨끗하게 소멸시켜 버릴 테니까. 말이야. 나중에 마계로 돌아가면 새로운 자아로 태어난 놈까지 갈기갈기 찢어서 켈베로스의 먹이로 주고 말 테다.]
하지만 천우는 흥분한 헬로가드의 말을 무시한 채 거대한 염소 괴물 형상의 바포메트에게 말했다.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 나는 헬로가드가 아니다. 물론 관계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이름으로 불릴 이유는 없지.
유치하군, 그저 천마가 남긴 헬로가드의 기운을 조금 얻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 믿어 달라면 믿어주지.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하긴 그토록 멍청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뻔뻔함마저 없었다면 마왕 노릇을 할 자격도 없는 거지.
그 순간 천우의 눈살이 더욱 깊이 찌푸려졌다. 그것은 바포메트의 말 때문이 아니라 그 순간 의식 속에서 헬로가드가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난동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식의 벽을 닫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았다.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엉뚱하게도 헬로가드와 깊은 관련이 있는 듯했기에 그또한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은 없지만, 네가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고 싶군,
나는 시시콜콜 네게 그런 것을 설명해 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네가 알아서 좋을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다만 네가 절대로 다시 마계로 돌아와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유중에 하나라는 것만은 밝혀두지.
천우는 그 말에 또다시 짙은 의혹을 느꼈지만 바포메트란 괴물이 더 이상 자세히 말해 주지 않으려는 듯하자 천천히 녹슨철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듣기로는 소멸을 각오하지 않으면 현상계에 나타날 수 없는 몸이라고 하더군, 천마와 무슨 계약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위험을 무릅쓸 정도라면 당연히 대가도 크겠지, 하지만 여기서 허무하게 소멸돼 버리면 억울하지 않겠나? 모든 것을 밝힌다면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주겠다. 어떤가?
천우의 그 말에 어이가 없는 듯 바포메트는 그 커다란 마계안으로 천우를 한동안 응시하더니 조금은 미심쩍다는 어투의 음성을 흘렸다.
너''''정말 헤로가드가 아닌 것이냐? 그럴 리가 없는데'''혹시 헬로가드 그 멍청한 놈이 또다시 계약이 아닌 상태로 네게 머물고 있는 것이냐? 그런 것이냐?
정답이라고 해두지.
뭐야?큭'''크허허허헝'''''그,그런'''크허허허헝'''
그 순간 전혀 웃음기를 보이지 않던 바포메트가 그 큰 입을 쩍 벌리고 온몸을 들썩이면서까지 괴상한 웃음소리를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 순간 웃음을 뚝 그치더니 미소를 짓는 모양인 듯 그 못생긴 큰 입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어찌 그런 멍청한 짓을 또다시 반복할 수가 ''''''정말 마계 마왕으로서 수치스런 짓은 혼자서 다 하고 있구나, 아무튼 좋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더욱 잘된 일이지, 단순히 이곳에 와서 헬로가드가 차지하고 있을 육신을 죽이는 것으로나마 지난날 내가 받았던 모욕의 일부라도 갚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면 헬로가드를 영원히 소멸시킬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로군,
계약도 없이 인간의 몸에 들어 있으니 네가 죽는다면 헬로가드 역시 소멸을 면할 수 없을 것이고, 또한 원래의 자아가 이계에서 소멸되었으니 마계에서 새로운 자아로 태어난다 해도 마왕으로서의 힘으로서의 힘을 갖추지 못할 테니 당연히 하급 마족으로 전락할테지.
나 역시 본신으로 현신한 이상 지금의 자아로는 마계로 돌아가지 못하겠지만 마계에는 헬로가드 그놈에게 이를 가는 마족들이나 마왕들이 넘쳐나니 영원한 괴롭힘을 주기에는 충분하지.
그 순간 천우의 의식 속에서 헬로가드는 거의 발광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천우로서도 견디기 힘들 정도였기에 그는 결국 의식의 벽을 치고 말았다. 저렇게 흥분한 상태의 헬로가드에게서 도움이 될 만한 말을 듣기란 기대하기 어려웠고, 눈앞의 괴물 역시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기에 일단은 정신을 집중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아티오네스 역시 바포메트란 존재에 대해 은연중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천우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내 제안은 유효하니까 일단 느껴보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천우는 순순히 대답을 듣기를 포기하고 일단 소멸의 위협을 느끼도록 바포메트에게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시로 했다.
그 순간, 바포메트에게 겨우어진 천우의 녹슨 철검에서 검은 기운이 스며 나오는 듯하더니 어느새 짙은 강기의 형태를 이루며 검을 완전히 둘러싸 버렸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바포메트에게서는 비웃음이 담긴 음성이 흘러나왔다.
헬로가드의 기운이 이용한 암흑의 오라인가? 다른 하급 마족에게는 조금 위협적일 수도 있겠군, 하지만 비록 완전하진 않아도 본신의 반에 해당하는 힘을 지니고 현상계에 온 나에게 겨우 그 정도의 기운을 가지고 덤벼보겠다니, 너 역시 헬로가드 못지않게 멍청한 인간이로구나.
그 말에 천우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즉시 바포메트를 향해 일검을 그어 내렸다.
비록 평범해 보이는 칼질이었지만 그것은 역풍검의 변초 중 하나를 전개해 낸 것이었다. 그 즉시 공간과 거리를 무시한 채 천우가 그어 내린 검의 궤적을 따라 백여 장의 공간이 함께 베여 나갔다.
툭!
바포메트는 비웃음을 흘리다가 갑자기 자신의 좌측에서 들려 온 뭉툭한 소리에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시커면 털 같은 것에 뒤덮인 길쭉한 무언가가 땅바닥으로 떨어져 가벼운 먼지를 피워 올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더불어 자신의 왼쪽에 붙어 있어야 마땅한 한쪽 팔이 갑자기 없어진 것도 함께 시야에 들어왔다.
잠깐 동안 사고가 정지한 순간, 바포메트의 귓가에 비웃음이 담긴 천우의 음성이 들려왔다.
정말 멍청한 염소로군, 염소를 썰 수 있는 칼만 있으면 되는거지 그것을 휘두르는 일은 전혀 별개의 일이라는 것도 모르는가.그 순간 검불게 이글거리는 바포메트의 마계안이 천우에게로 향하며 믿기 힘들다는 투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네가 가진 힘의 원천이 헬로가드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단 말이냐? 설혹 그렇다 해도 어찌 인간이 지닌 힘으로 나에게 상처를 ''''
외팔이 염소, 이제 내 제안을 다시 생각해 볼 마음은 생겼는가? 그 말에 바포메트는 다시 그 괴이한 웃음소리를 발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크허허헝! 까불지 마라, 건방진 인간! 이 세게에 해당하는 마계의 인과율을 지니고 테어난 인간들은 제법 강하다 하더니 생각했던 것  이상이로구나, 그 정도라면 마음먹고 놀아줄 만하겠는걸, 하긴 헬로가드를 소멸시킬 수 있는 기회인데 너무 싱겁게 끝난다면 그것도 아쉬움이 남겠지.
순간 매끈하게 잘려 나간 바포메트의 왼쪽 어깨 부분에서 새로운 팔이 불쑥 솟구쳐 나오더니, 세로 생겨난 그 왼팔에 땅에 떨여져 있던 왼팔이 스르르 딸려 올라가 잡혔다.
생각지도 않게 아까운 힘이 줄어든 것은 아쉽긴 하지만,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무기를 지니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헬로가드의 기운 때문에 몸의 일부로 다시 사용할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 순간 바포메트의 새로 생겨난 왼팔에 잡힌 나가 팔이 죽 늘어나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삼지창과 유사한 형태로 변형되었다.
천우는 그리 큰 차이는 아니지만 바포메트의 전체적인 체구가 조금은 줄어있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자 그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회심의 미소가 어렸다.
애초에 바포메트라는 괴물 역시 신체 중 어디를 잘라내든 그것이 완전하게 타격을 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다만 같은 마계의 기운인 헬로가드의 기운이 어느 정도 타격을 입힐 수 있는지 궁금했고, 그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비록 신체의 어디를 잘라내든 재상은 할 수 있겠지만 예전의 발록처럼 다시 붙이가나 하지는 못하고, 또한 다시 신체를 재생시키는 만큼 원래의 힘이  감소한다는 것도 알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예전에 발록이 헬로가드의 기운이 천마로부터 얻는 바람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에 비해 오히려 지금이 훨씬 상대하기 편한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도저히 재생이 불가능할 만큼 조각을 내주는 일이라면 천우로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 여겼다. 다만 아직은 들어야 할 말이 있기에 손을 쓰는 것을 미루어둘 뿐이었다.
물론 바포메트는 방심하고 있다가 어이없이 자신의 팔이 잘린 것만으로도 굉장히 분노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인간을 상대로 삼안의 창을 사용한다는 것이 조금은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지만, 나를 화나게 만들었으니 그만한 대가는 치르도록 해주어야겠지, 어떠냐, 지금쯤 헬로가드가 네 의식 속에서 벌벌 떨면서 설명을 해주고 있겠지? 아니면 어서 도망치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나?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테니 아마도 절망감에 몸부림치고 있겠군.
비슷하기는 했다. 단지 절망감이 아니라 분노로 인해 발광하고 있다는 게 다를 뿐,
그때,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아티오네스의 음성이 의식 속에서 울렸다.
[바포메트를 너무 만만히 보지는 마라. 비록 헬로가드의 기운에 의해 피해를 주는 것이 가능하다고는 해도 비포메트는 발록처럼 전투에 능한 마족이 아니라 마법에 능한 마족이다. 특히 듣기로는 바포메트가 사용하는 저 삼안의 창에는 세 가지 특이한 권능이 어려 있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그러니 헬로가드를 진정시켜서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 텐데''''그리고 나역시 때로는 긴장감이라는 느낌도 가져보고 싶다. 지금과 같은 기회가 자주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하나도 긴장하고 있지 않잖아. 지금 나야말로 조금이라도 긴장하라고 말해 주고 있는 건데 무슨 엉뚱한 소리야.]
[어떤 공격일지 궁금해 하고 있는데'''이것이 긴장감이 아니라는 건가?]
[그런''''휴우! 말을 말자, 아무튼 조심해라. 최소한 전에 발록의 마지막 공격보다 위력이 약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야.]
솔직히 천우로서는 바포메트의 공격이 그 정도라면 지금에 와서는 궁금해 할 가치도 없었다.
발록을 상대했을 당시에 처음으로 풍검을 전력으로 펼쳐보았고, 발록을 처리하고 난 이후에 오히려 그 힘이 너무 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럼으로써 새롭게 풍검에 대해 깨닫게 된 바는 결코 그 정도가 한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것을 느끼게 되면서 풍검은 마치 스스로 살아 있는 것처럼 자신을 변모시켜 가고 있었다.
헬로가드와 아티오네스는 그것을 권능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권능도 멈추지 않고 자꾸만 커져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기에 지금으로서는 또다시 전력을 기울여 풍검을 펼친다면 어느 정도일지 천우 자신도 짐작이 가지 않는 상태였다.
때로는 막연하긴 하지만 어쩌면 자신이 딛고 서 있는 세상 전체를 지울 수 있을 정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감과도 비슷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한데 그것은 오히려 자신의 존재가 인간과 더욱 멀어지는 것이라 느껴졌기 때문에 그리 달갑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도 천우는 알 수 없는 승부 속에서 평범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그의 의형이나 백양신마 등이 얘기하던 무인으로서의 감정을 느껴보고 싶어 했지만 아티오네스의 말을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감정이 긴장감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닫고는 씁쓸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 그리고 그러한 표정은 바포메트가 자신을 비웃는 것으로 느끼도록 하게에 충분했다.
지금쯤 겁을 먹고 벌벌 떨어도 시원치 않을 인간이 오히려 그러한 비웃음을 보이자 바포메트는 분노한 상태에서도 정말 자존심이 상하고 말았다.
천마가 나중에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니 다른 인간들은 놔두고 목적만 이루고 오라 했지만, 너로 인해 생각이 바뀌었다. 너와 이곳에 있는 인간들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 있는 모든 인간들을 죽여버리겠다. 물론 그 중에서도 너는 결코 평안히 죽지는 못한다.
그 순간 바포메트가 삼안의 창이라 부른 창의 끝 부분에서 갑자기 정말로 눈 모양 같은 것이 생겨나더니 동시에 번쩍 뜨여 각기 다른 광체를 흘려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혈광과 청광, 그리고 칙칙한 묵광이었는데 그것을 보는 순간 천우는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천우였기에 그저 불쾌감을 느끼는 정도였지, 이미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리 물러나 있는 다른 사람들이 그 삼안의 창에 뜨인 눈들을 직시했다면 당연히 불쾌감 정도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속에서 타오르는 공통을 맛보고 싶으냐, 아니면 영원히 녹지 않는 얼음속에 갇혀 고통을 당하고 싶으냐? 그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무간의 어둠 속에서 스스로의 살과 뼈까지 씹어 먹는 고통이 영원히 반복되도록 만들어 줄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라도 살려두겠다는 말은 아니고, 네 육신이 소멸된 후에 남은 영혼이 받게 될 영원한 고통을 말하는 것이다. 선택하라.
말로는 선택하라고 했지만 별로 들어주고 싶은 의사는 없는듯 바포메트는 천천히 기괴한 눈동자들이 매달려 있는 삼안의 창을 치켜들고 있었다.
아니지, 네놈에게는 특별히 그 세 가지 고통을 모두 맛볼 수 있는 혜택을 주도록 하마, 지금껏 제물로 바쳐진 어떤 인간에게도 두 가지를 한꺼번에 베풀어준 적이 없었으니 너는 영광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처음부터 그럴 의사였고 단지 공포를 느끼게 해주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천우에게는 그저 쓸데없는 수다로 느껴질 따름이었다. 그러나 염소 괴물의 힘도 느껴보고 싶었으므로 그저 슬쩍 눈살을 찌푸린 채 자신을 향해 겨누어진 삼안의 창을 주시하고만 있었다.
한순간 바포메트가 치켜든 삼안의 창끝에 떠진 괴안에서 더욱 짙은 광체가 뿜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이글거리는 듯 한 붉은 광채와 시리도록 파란 청색의  그리고 그 자체가 시커면 구멍처럼 느껴지는 어둠으로 이루어진 세 개의 구체가 천우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그러나 천우 역시 그냥 순순히 몸으로 맞아줄 생각은 아니었으므로 즉시 선풍검을 전개해 주변의 모든 공간을 차단시켰는데 그것은 마치 돌개바람의 형태로 주변의 빛과어둠을 밀어내는 형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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